Page 38 - 전시가이드 2020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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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컬럼
제니 홀저,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1982), 6.1×12.2M, 뉴욕 타임즈 스퀘어©작가-Jenny Holzer, ~
에스프리누보
진 현대인들에게 생각지 못한 깨우침을 주며 현명한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새로운 정신 점에 주목하면 오히려 당연한 감마저 든다. 이토록 확고부동한 그녀의 소신이
녹아 든 '텍스트'를 통해 작업 재료로 선택된 후, 인쇄물이나 옥외 광고판, LED
전광판 등을 이용한 호소력 있는 메시지가 대중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제니
홀저는 40세의 나이로 출세의 정점에 오른 듯하다. 그녀는 대학 초년시절이
글 : 김구현 (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었던 1972년에 자신의 고향인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
해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89년 말에서 90년 초에
문장 한 줄로 그녀는 스타가 됐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가 원하 는 그 나이대의 예술가로서는 흔하지 않게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
는 것으로부터 날 지켜줘.)’ 1985년 ≪뉴욕 타임스 스퀘어≫ 전광판, 욕망과 소 을 열고 ‘카탈로그 레조네’를 발행하는 영광을 안았다. 제니 홀저는 마땅히 그
비로 점철된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이 문구가 뜨자 바삐 지나가던 뉴요커 럴 자격이 있다. 그녀는, 일반적인 작가들에게서는 흔치 않은, 40세의 나이에
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친 내면을 들여다봤 대표작(수작)이라고 말하는 것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다. 정보전달의 도구에 불과했던 전광판을 공공미술의 장이자 성찰과 사색의 그녀의 작품은 동시대의 예술작품과 다른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
도구로 변모시킨 이 작업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타임스 스퀘어≫ 나 다른 표현 형태와 상호연결도 되어 있다. 그녀의 작품은 <팝 아트>, <미니
전광판 광고 일을 하던 친구의 제안으로 직접 쓴 문구를 이용, 작업에 참여했 멀 아트>, <컨셉트 아트>로도 불리고, <사회비판적·정치적 예술>로도 간주
던 무명의 여성 미술가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된다. 제니 홀저는 처음에 마크 로트코(Marc Rothko)와 모리스 루이(Morris
Louis) 에 비견되는 추상화가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1950년 미국 오하이오주 갤리 폴리스에서 태어 일이 사실상 “이차적인 숭고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70년대 말에 이러
났다. 1972년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1975년 로드아일랜드 한 “숭고한 재료”를 공개적인 프로젝트와 연결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먼
디자인스쿨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한다. 1977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저 도식과 제목으로 실험을 하고 나서 언어를 축소한다기 보다는 아예 극소화
‘Independent Study Program’ 과정을 이수했다. 보편적인 기준에서 제니 홀 시켜 버린다. 미국 중서부지방 고향 사람들의 간단하고 명확한 언어 전형처럼
저가 속한 미술 사조를 정의할 경우, 미국의 <개념주의 예술가>이며 <환경미 단순하고, 그녀 스스로가 높이 평가하는 건전한 상식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
술가>로 함축시킬 수 있다. 특히 그녀의 메시지가 언어와 이미지에 무감각해 트루이즘(자명한 이치)”으로 단순화 시킨 것이다. 이것으로 그녀의 작품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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