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0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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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홀저, 당신의 삶을 위해 투표하라, 2020년 대선 캠페인 ©ADAGP






            적인 권위나 계산된 미학의 정교한 질서의 모습만 얻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다. 그녀가 미국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유럽 예술시장
            그러한 작업으로 완벽한 익명성을 얻는데, 그러한 질서로 유발된 차이와 모        은 그녀를 발견했던 것이다.
            순성을 유일한 진리로 나타내는 데 성공했다. 인생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에서
            도 하나의 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진리가 존재한다. 모든 그림은 진      제니 홀저와 국내화단과의 인연은, 2011년 9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니 홀저는 언어그림을 사용한다. 또한 그녀의 질       에서 개최된 전시회 이후 수 차례에 걸쳐 방한했던 관계로, 이미 친숙해진 글
            서원칙으로 읽는 것이 쉬워졌다. 격언들은 특유의 뉴욕식 만화나 성냥갑의 문       로벌 작가이다. 원래 화가였던 그녀가 ‘텍스트’를 소재로 삼은 것은, 1977년 ≪
            구처럼 편하게 읽혀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서바이벌 시리즈』에서 제니 홀저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작가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는 새로운 색조를 입혔다. 격언이나 문장은 이제 공격성을 띠기 시작했다. 그      한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마르크스, 수전 손택(미국 비평가), 프랑스 철학
            목소리는 재촉하는 듯했고 휴머니티를 요구했다. 제니 홀저는 여성이 남성보        서 등등 휘트니미술관 측에서 읽으라고 내준 책 리스트의 방대함에 질려 반발
            다 인간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역사 속에서 여      심이 생겼다."고 회상한바 있다. 강요에 대한 저항정신이 아이디어를 낳은 것
            성들이 억압하는 자이기보다 희생자였고 남성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민감하          이다. 책 내용을 요약해 개요만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작업을 생각해낸 그는 요
            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작품을 페미니즘으로 볼 수는 없다. 그녀      약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250여개의 짧은 문장을 지어냈다. ‘Abuse of power
            는 자신이 자각이 있고 자유로운 정신으로 행동하지만, 적어도 남자보다 경        comes as no surprise(권력의 남용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A man can’t
            제적인 면에서는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여성운동의 2세대나 3세대에 속한         know what it’s like to be a mother(남자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뭔지 알 수
            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코 하이테크 신봉주의자는 아니었다. 하지       없다)’ 등의 문장을 인쇄한 종이를 뉴욕 소호 거리 벽에 붙이고 행인들의 반응
            만 새로운 기술은 그녀의 예술개념과 일치했다. 이 새로운 기술로 사람들에게       을 살핀 것이 『텍스트 작업』의 시작이었다. 최근에는, ‘2020년 미국대통령 선
            더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 의미의 그림을        거’ 일정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에서, 플로리다, 미시간, 펜실바니아 및 위스
            부정하고 자신의 작품에도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예술가인 제니 홀저        콘신 등 ‘경합 주’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유세차량에 <투표독려 문자 판>
            는 뉴욕의 설치작품을 통해 다시 그림으로, 그것도 전체적으로 인식될 수 있       을 설치하면서 그녀만의 고유의 방법과 수단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중
            는 그림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논증한다. 그녀는 제44회       이다. 공교롭게도, 요즘 우리 화단의 미술인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화두 또한,
            비엔날레에서 국가대표상을 받았다. 95년 동안 남자들만의 잔치였던 베니스        2021년 1월로 예정된 ‘차기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선거이다. 아무쪼록, 오랫동
            비엔날레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유럽지역 출신의         안 국내 화단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목소리가 어떠한 유형으
            심사위원단들이 미국인인 그녀에게 상을 수여한 것이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         로든지 ‘새로운 정신’으로 도출되기를 간절히 갈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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