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전시가이드 2020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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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Bloo-ming(가족), 석재, 52x27x11cm, 2016   기억속으로, 목재, 150x80x65cm, 1999  삶, 목재, 129x45x30cm, 2011




                          2020. 11. 18 – 11. 30 충남도립도서관 2층 기획전시실 T.041-635-8000, 홍성군)



             물질의 관점에서 보는 조각                                 보는 이의 시선과 정신을 자극해서 특정 이미지나 모종의 서사를 발생시키는
                                                            근간으로 작동한다.
             고영환 개인전                                        고영환의 작업은 순수한 조형세계에 겨냥되어 있다기보다는 특정한 형태를

                                                            부단히 연상시키는 선에서 이루어진다. 우선적으로 사람의 몸이나 자연의 어
                                                            느 형태를 연상시킨다. 극히 제한된 유형의 상들을 절제된 방식으로 재현하
            글 : 박영택(경기대 교수, 미술평론)
                                                            는 작가의 작업은 최소한의 이미지와 조각의 물성이 만나 이룬 풍경이다. 단
                                                            순성과 정지감 속에서도 생명력을 감지시키는 조각이다. 고졸하고 소박하면
            고영환은 전천후 생활조각가이다. 고영환의 작업은 목조, 석조를 주축으로 하       서도 인위적 흔적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 물질의 내부에서 자연스레 형상을
            고 특정 형상의 재현이나 종교적 도상, 그리고 유기적인 형태를 연상시키는        불러내려는 이러한 시도는 서구모더니즘 조각과 동양적 사물관, 자연관이 맞
            추상조각 등을 시도하고 있다. 얼굴, 꽃, 산, 모자(母子), 난 등을 연상시키는 형  물린 흔적으로 보인다. 작가는 돌과 나무의 물성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단순
            상들이 자연에서 추출한 것들이다. 공통적으로 재료 자체의 형태와 재질, 물       한 형상을 안긴다. 과도하게 만지거나 무엇을 의도해서 제작했다는 느낌을 최
            성을 가능한 유지하면서 그 원재료의 특성과 맞물리는 선에서의 최소한의 형        소화시키고 있는 그의 작품에는 유머와 유희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우
            상과 이미지를 추출해내고 있다는 인상이다. 다분히 연역적인 발상이다. 이런       연히 주운 돌, 나무, 콘크리트 파편을 발견했다. 그 물질이 묘한 형상과 강렬
            인식은 그가 공사 현장이나 주변에서 수습한 콘크리트 파편이나 철근이 박힌        한 느낌, 생기 있는 것으로 다가왔고 그는 그것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았다. 그
            시멘트 덩어리들을 활용한 작업에서 돋보인다. 실은 그의 모든 작업이 이렇듯       러는 순간 문득 그 물질이 또 다른 존재로 환생하는 상상에 빠진다. 이때 작가
            우연히 발견한, 채집한 나무나 돌로부터 발원한다.                     는 약간의 손길을 얹혔다. 그러면서도 요구되는 것은 보다 세련된 조형감각과
            고영환의 작업은 돌과 나무에서 자신이 본, 상상한 형태를 추적한다. 우선적       완벽한 마무리일 것이다.
            으로 주어진 물질을 보는 일에서, 그것으로부터 몽상하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       여기서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형의 없음이 형의 있음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
            이다. 그런데 이 상상하기는 이미 자신의 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경험적인 것       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 안에서 찾는 일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작가
            들의 소산일 수도 있고 물질 자체의 피부나 형태로부터 매번 새롭게 발화될        는 무엇인가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표현하는, 이른바 주체중심의 제작이 아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작가로부터 기인했는지 혹은 물질로부터 발        라 물질을 통해 형/형상을 발견하고 이를 자연스레 제시하는 방법론을 취한
            원했는지의 차이는 좀 애매하다. 어쩌면 그 둘이 동시에 맞물렸을 수도 있다.      다. 사물과 자아, 주체가 그 어느 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접점
            조각이란 환영을 기본으로 하는 회화와 달리 물질의 구속력이 그만큼 절대적        에서 존재한다. 이는 조각이 무엇보다도 주어진 사물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이다. 그것은 이미지이기 이전에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이다. 동시에 그 물질은      한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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