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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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치 모습
김승영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전 세계 미술교육학자들이 가입된 세계미술교육 의 실내 전시가 이루어졌다고 들었다. 야외와 실내 작품을 어떻게 연계하여
협회(InSEA, 1954년 설립)에서 3년마다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우리나라 감상하는 것이 좋은가.
로 유치하여 2017년 대구 DEXCO에서 5일간 개최하게 되었을 때 전시초대작 이번 전시는 성북구립미술관 야외를 시작으로 2층과 3층으로 이어진다. 야외
가로 초청하면서이다. 개막식에는 류재하 작가의 디지털 맵핑 프로젝트와 안 거리 갤러리 전시가 시작된 2020년은 COVID-19 초기 단계였고 야외 설치라
규철 작가의 ‘기억의 벽’(2015) 연계 프로젝트, 폐막식에는 김승영 작가의 ‘종 서 전시가 가능했다. 성북동의 지리적, 환경적 특성을 반영하고 야외 거리 갤
이비행기’(2000)와 연계한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가 각각 선보였다. 폐막식 당 러리 공간의 특성에 맞춰서 그동안 해온 조각, 설치미술, 영상 등 5점의 작품
일에는 작가가 직접 참여하여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자아성찰적 관점에 을 변형시켜 설치하였다. 야외 거리 갤러리는 제법 길이가 길어서 이곳을 산
서 작업을 펼쳐나가는 작가의 일반적인 작품 특성과 달리, 외부를 향해 ‘능동 책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걸듯 다양한 느낌으로 설치하는 것도 중요한 부
적 관계 맺기’를 펼치는 소통 방식의 ‘종이비행기’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 분이었다.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성당과 교회 등 주변 거리의 분위기와 작품
다. 이 작품처럼 미술 활동이 펼쳐지는 공간과 장소를 기반으로 지역 공동체 들이 잘 맞아떨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와 상호소통하는 것이 동시대 미술에서 매우 중요하며, 이는 현재의 미술교 있던 것처럼 동네 주민들도 작품 주위에 앉아 쉬기도 해서 그 공간과 자연스
육에 있어서도 주요 핵심 내용이다. ‘종이비행기’와 유사한 맥락으로 큰 감동 럽게 어우러지는 설치가 되었다고 본다. 야외 작품이 소통과 관련된 작업이면
과 여운을 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꼽자면 ‘생명의 배’(2001)와 ‘바다 위의 소 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라면, 실내로 이어지는 2개 층의 작품은 현실의 삶
풍’(2002)을 들 수 있다. 이후 작가는 2017년 서울시민 투표를 통해 선정되어 ‘ 에서 벗어나 삶 너머의 이야기 혹은 마음속의 무게를 내려놓은 작품이어서 관
시민의 목소리’를 서울광장에서 전시한 바 있으며, 국립춘천박물관의 ‘당신의 람객들이 여기에서 잠시나마 쉬어가게 하고 싶었다.
마음을 닮은 얼굴-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이 국립중앙박물관이 꼽은 2018
년 최고의 전시로 선정되면서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창령사 터 오백나 이 전시 이후 작업 방향을 알려달라.
한’으로 새롭게 구성된 전시에서도 ‘일상 속 성찰의 나한’을 선보이면서 관람 살면서 느끼는 내 삶을 이야기하다 보니 앞으로의 작업이 어디로 흘러갈지 나
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이 전시는 큰 호평으로 인하여 호주 시 조차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작업의 내용과 상관없이 가능하면 아주 단순하고
드니에 초대받아 11월에 다시 전시될 예정으로 있다. 이렇게 꾸준히 작업에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15
몰두하는 작가의 이번 기획전이 궁금하여 인터뷰하였다. 년 전에 구상했지만 작업비를 비롯한 여러 여건들로 인해 풀지 못한 작업들이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내 정체성과 관련된 것으로, 패션을 활용한 작업
기존 작업에서는 물, 불, 빛이 강조되었는데 이번에는 땅이다. 전시명 '땅의 소 구상이 있다. 그동안 해왔던 것과 별개로 아마추어스러워서 오히려 재미있게
리'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될 것 같은데, 빨리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땅에 사는 삶은 정말 고단하고 힘들다. ‘땅’을 달리 말하면 ‘자연’으로, 이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이 세상은 살만하겠지만,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 기획전이 이루어지는 2층 전시장은 들어가는 통로가 급격하게 꺾이면서 관
는 불안함 때문인지 우리는 땅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이해하지 못한다. 신문 람객에게 작품을 대하기 전 마음가짐을 새롭게 가지도록 만드는 순간적 모
에는 늘 우리를 자극하는 사건, 사고,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제 우 먼트를 선사한다. 이는 하나뿐인 통로에서의 이동방식을 보여주는 ‘엘리베이
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천년 전부터 자아성찰에 대한 이야기는 터’(2007)를 연상시킨다. 또한 3층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Sweep’에서의 소재
있어 왔지만 이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은 우리가 앞을 향해 맹목적으로 질 들은 작가의 ‘기억의 방-헌시’(2003), ‘의자’(2011, 2013, 2016), ‘그는 그 문을
주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나 스스로도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현재 자신의 열고 나갔다’(2016), ‘당신은 당신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2016)를 떠올리게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잠시 멈춰서 뒤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게 중요하다. 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을 포함하여 땅, 불, 물, 빛은 작가에게 있어 생명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땅의 소리’에서도 ‘시민의 목소
이번 기획 전시의 대표 작품 'Sweep'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리’, ‘일상 속 성찰의 나한’에서처럼 물성에 생명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그 사물
무언가를 쓸어버리거나 정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말로는 자유를 말 과 자기 스스로에게 다가가고 되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소
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고 평생 쥐고 있는 경우가 많 리라는 매개는 시각적인 요소에 매몰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며 중요 요소들
은데, 여기에는 수많은 이유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잠시나마 생각 을 아우르고 감싸 안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고단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해보고 쓰고 버리는 장소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새벽녘 혹은 저녁 무렵 사람 우리가 지고 있는 세속적인 번민을 내려놓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러나 가장
들이 모두 떠나고 없는 공간에 빗질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중요한 기본을 잊지 말고 되돌아보라고, 그리고 쉬어도 좋다고 손짓한다. 정체
전등이 꺼진 책상과 의자에 잠깐이라도 앉아서 무언가 끄적이는 사람들을 상 성, 소통과 관련한 작품들과 연계하여 앞으로는 패션에 대한 구상도 있다니 이
상하였다. 그냥 앉아 있어도 되고 멍때려도 좋은 채로. 또한 즐겁게 기다려볼 일이다. 김승영 작가의 이번 기획전 ‘땅의 소리’는 성북
구립미술관에서 3월 25일부터 6월 27일까지 개최된다. 전시 기간 동안 야외
야외 작품은 1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팬데믹으로 인해 수정이 가해져 지금 거리 갤러리와 미술관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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