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2022년 02월 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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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 내부 단청
집옥재 천장 집옥재 실내 단청과 만월창
창살무늬도 다른 전각과 다른 중국풍이다. 우리나라의 창살무늬는 기하학적 卦)를 꾸며서 궁궐의 일반적인 반자와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종다라니로 꾸
인 띠살무늬, 빗살무늬, 격자살무늬와 화려한 꽃살무늬가 있다. 집옥재의 창 민 우물반자에는 팔엽 중판 연화무늬로 단청을 하였다.
살은 기하학적인 문자의 모양을 본뜬 만자(卍字)무늬로 꾸미고 모두 뇌록으로
채색하였다. 복도처럼 실내를 관통한 긴 방의 뒷벽에는 둥근 보름달 모양의 만 이런 집옥재였지만 머지않아 고종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월창(滿月窓)이 설치되어 있다. 만월창의 둥근 원형과 창살이 교차하여 만든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을 겪은 고종은 경복궁을 버리고 1896년 러시아 공
삼각형, 사각형 공간의 시각적 느낌은 언제 보아도 명작에 손색이 없을 정도 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감행하고 그 후 1년 뒤 덕수궁으로 환궁했는
이다. 창살과 창살 사이의 공간에 오방색을 칠했다고 상상해 보면 신조형주의 데 이후 이곳에서 계속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Neo-Plasticism)를 선도한 몬드리안(Pieter Mondriaan, 1872~1944)의 컴
포지션(Composition)을 능가하지 않을까? 집옥재의 건립은 조선 말기 급변하는 국제 정세의 격랑 속에서 새로운 건축
양식을 절충하여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려고 시도한 일
팔우정은 팔각형의 건물로서 사방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다. 유리창은 기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집옥재를 짓고 나서 1년 후인 1882년(고종 19) 임
존의 종이를 붙인 창호보다 채광과 보온 면에서 월등히 효과가 좋아서 실내 오군란과 1884년(고종21) 갑신정변 이후 세차게 몰아치는 청나라와 일본, 서
는 밝고 아늑한 구조이다. 천장은 팔각형의 귀접이 천장으로 조성됐다. 즉 건 구 열강의 각축에 갈피를 못잡고 궁궐의 가장 깊은 곳, 국왕이 개인적인 용도
물이 팔각 구조이다 보니 천장도 큰 팔각형 안에 우물반자를 넣고, 중앙에 다 로 쓰는 사적 공간에서 조차도 전전긍긍하였던 약소국의 비애를 느끼게 하
시 팔각형을 끼워 넣은 형태이다. 팔각형 틀 안에 태극문과 그 둘레에 팔괘(八 는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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