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2019년전시가이드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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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컬럼


































        베르나르 뷔페가 제작한 아내 아나벨 슈웝의 다양한 모습







          에스프리 누보                                       예리하게 그어진 수직·수평선의 금욕적 구도로 주제 자체의 기묘한 실존을
                                                        통렬하게 떠올리는 특이한 구상 세계를 개척했다.
        새로운 정신                                          전후 파리 화단은 엄청난 전쟁 체험의 비통함을 표출시킨 비구상, 비정형미술

                                                        이 새롭게 진행된 데 반해 그는 우수에 젖은 시각으로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
        글 : 김구현(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구상회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불과 20세의 나이에
                                                        프랑스 최고 권위의 비평가들이 신인에게 수여하는 <크리틱 상>을 수상한 후
                                                        프랑스 구상화가의 상징적 존재로 전 세계적으로 뷔페 열풍을 몰고 왔다. 17살
                                                        되던 해 그는 친구 로베르망티엔느의 소개로 시골집에서 머물면서 이미 『십자
        1999년 10월 5일, 저명지 『르몽드』 『리베라시옹』 등은 한 화가의 죽음을 알렸  가의 강하』와 『로베르의 초상』 등을 제작 했다.
        다. '베르나르 뷔페 자살’이라는 톱기사로. 그의 자살은 우리들에게 놀라움을
        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독특한 표현법으로 프랑스 사람들        1946년 파리의 ≪보자르 화랑≫에서 열린 '30세 미만의 살롱전'에 자화상을
        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온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이며 대중        출품했다. 19살 그는 파리의 대학가이자 라틴식당들이 모여있는 ‘캬르티에라
        적인 화가였다. 그래서 그의 자살은 그의 예술을 아는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까     땅’ 지역의 작은 서점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초기 작품에서부터 그는 전투적
        지 한다. 적어도 뷔페는 전후 금세기 화가들에게 있어 프랑스가 낳은 가장 전설     인 모습의 작품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 전시에서 이미 화단의 주목을 받기
        적인 화가였다. 그의 나이 71살, 상업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화가, 프랑스 현대    시작했고 그의 작업은 어린 시절의 작업으로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
        예술의 교주로 떠받들어졌던 인물이었다.                           풍에서 독특함을 보였다. 그는 그 전시회에서 파리의 국립미술관을 위해 관장
                                                        레이몽코니아가『어린 닭이 있는 정물』을 구입할 정도로 화가로서의 능력을 인
        음울한 잿빛과 날카로운 선묘로 화면 가득 비극적 내용을 주로 그렸던 뷔페는       정 받았다. 삐쩍 마르고 거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신문기자들은 『지옥에
        1928년 파리의 말제르브 구에서 태어났다. 냉정했던 아버지와 생활고 때문에      서 보낸 한철』을 쓴 당대의 뛰어난 시인 랭보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근심 걱정에 싸여 살던 어머니 밑에서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다. 1943년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야간 강습소를 다니며 데생을 배운 그는 이듬해 꿈에 부풀       1953년 피카소가 레닌의 초상화를 그려 화제가 되기도 했던『레레트르프랑세
        어 파리국립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뷔페의 정규 미술공부는 어머니의         즈』라는 유명잡지에 당대의 지성  루이아라공은 독창적으로 이룩한 뷔페의 풍
        죽음과 더불어 몇 달 만에 막을 내렸다. 슬픔과 좌절감에 방황하던 그는 학교      경화에 담겨진 신선함을 극찬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미술애호가인 쟝지
        친구 로벨망티안느의 배려로 같이 화실을 쓰게되면서 생전 처음 유화를 시작        오노는, 『순수의 탐구』 저자 뷔페를 위해 드라이포인트를 제작하면서 “그의 그
        하자마자 타고난 천재성을 드러냈다.1946년 18세때 파리 화단에 등장한 뷔페     림을 보면 그 안에서 날고 싶다는 욕망을 100번이나 더 느낀다”고 실토 했다.
        는 야수파 경향의 작품을 선보이다 1948년에 이르러 공허한 무채색 배경에다      잔인한 선을 가진 화가라고 일컫는 그의 선묘법. 후벼내는 듯한 직선적이고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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