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2019년전시가이드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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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GP 옴니버스 열전
ADAGP 글로벌저작권자 연합회 공식사이트에 게재된 베르나르 뷔페 등록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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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GP 옴니버스 구체적으로1950년대 중반 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이탈리아까지
이름을 날렸다. 1955년에는 미술잡지 『꼬네상스데자르』에서 뷔페를 전후의
최고의 화가 10인중 1위로 선정했다. 소설가 조르주심농을 만나 그의 작품 『
열전(13) 라 샹브르』의 무대와 의상 작업을 했다. 이렇게 돈과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파리 외곽 도몽에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가 다음 해에 보다 쾌적한 환경의 저
택으로 이사를 단행한다.
김구현(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1958년에 그의 인생에서 가장 정점을 찍은 중요한 일들이 벌어진다. 당대
의 파리 3대 현대 화랑인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그의 첫 회고전이 열
뷔페는 피카소와 견줄 만큼 명성이 드높았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억대 이상 렸다. 그의 나이 30세에 불과했을 때에 잡은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
의 비싼 값에 거래가 되었고 그의 그림은 파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현금과 같 고 대성황을 이룬데 이어, 3월 30일 자『뉴욕타임즈』에는패션디자이너 이브
은 작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과 인생에 관 생 로랑, 영화감독 로제바딤,영화배우 브리지트바르도, 소설가•극작가 프랑
한 극도의 평가는 늘 찬반양론이었다. 그만의 독특한 작품경향과 걸맞는 ‘인 수아즈사강과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이 다섯중 하나’로 뷔페가
지도 확보’ 과정을 살펴본다. 언급되었다.
뷔페의 작품 전반에 감도는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와는 달리 그는 이른 나이 뷔페는 특히 사강과 절친한 사이였다. 뷔페는 그녀의 발레『이뤄지지 않은 만
부터 작가로서 더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9세에 첫 개인전을 가졌고, 곧 남』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담당한다. 또한사강이교통사고를 당해, 사고 후유증
바로 20세에 최고 권위의 <비평가 상>을 수상하며 파리 최고의 갤러리 중 하 때문에 처방받은 모르핀 중독으로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기간
나인≪드루앙-다비드≫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이후 해마다 개인전을 열었고 동안 쓴 일기를 엮은 책『독약: 사강의 환각일기』의 삽화 작업도 하였다. 내면
30대 초반에는 이미 구상회화의 대표 주자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의 고통을 표현한 그의 삽화 또한 사강의 글만큼이나 찬사를 받는다. 뷔페는
다작을 쏟아내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순수 회화외에도 카뮈의『이방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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