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2019년전시가이드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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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유인 아르크 성에서 한창 작업중인 베르나르 뷔페
ADAGP 글로벌 저작권자로 등록되었다는 의미는 곧, 전 세계 조형미술 생태계에 작가 고유의 ‘개인 브랜드’를
정통 계보에 올림으로써 시장 경쟁력 및 인지도의 확장여부를 투명하게 추적할 수 있는 기대 효과를 동반한다.
≪롤랑쁘띠 발레단≫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담당하기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한 추상미술에 도전하였다.
초연하게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도 했다.
뷔페는 매우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손재주
같은 해 5월에는, 동료 화가 자비에르제바코의 소개로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 가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가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은 모두 영
져버린, ‘영원한 뮤즈’아나벨슈웝과 결혼에 골인한다. 이와 같은 브랜드 인지 감이 아니고 손의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작가였다. 그래서 그런 그가 자살
도의 상승세에 힘입어 1961년 프랑스 남부 액상프로방스의 고성 ≪아르크 성 했다는 것은 더 의미가 깊게 다가온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예술가에게
≫을구입한 후1964년까지 거주한다. 그도 모자라는지, 전용차로롤스로이스 있어 어디든 있을 수 있다. 1971년에는 프랑스 문화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훈
를구입하면서 운전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운전기사까지고용하는 등 극도의 장인 <레지옹도뇌르>를 수여 받았다.
사치를 일삼는다. 화가치고는 너무 화려한 성을 구입한 것을 두고 주변에서
말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작가로서의 초심을 버리고 호화생활을 하 [ADAGP글로벌저작권자]로써의 베르나르 뷔페는,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꾸준
는 등 사람이 변했다는 것이다. 하게 선두 그룹에 속하는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1992년에는 프랑스 최고의
미술지 『보자르』의 100호 기념 여론 조사에서, ‘앤디워홀’과 ‘베르메르’를 뛰어
결국 뷔페의 시대는 그의 나이에 비해 일찍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명성 넘어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위대한 예술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는 전
과 부를 얻은 뷔페가 롤스로이스와 300년 된 고성을 구입하자 평단이 예술 후시대를 대표하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프랑스 예술가’로알려진다. 흔히
성을 의심했다. 가난하고 우울한 작품세계가 전부이기를 바랐던 대중들은 화 들 떠올리는 ‘예술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 평단의 공격에 자주
가의 삶에 의문을 나타내고 돈과 결탁한 화가라는 비난을 한 것이다. 무엇보 노출됐다. 구상회화가 저물어 가던 당대의 흐름에 따라 철저하게 외면 받은
다 뷔페의 명예에 상처를 입힌 사건은 당시 프랑스 미술의 주류는 추상표현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기에 이르렀다. 궁극적으로 파격적인 양태를 몸소 실천
주의의 하나인 <앵포르멜> 운동이 주류였다는 점이다.뷔페가 잠시 추상회화 한 베르나르 뷔페는, 눈에 보이는 성공에 열광하는 현대의 작가들에게, 진정
에 맞서 구상회화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줬지만, 1960년대에는 파리를 중심으 한 예술과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운동인<누보레알리즘>이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지배
1) 라틴어로 ‘만인을 위한’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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