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전시가이드 2020년 07월
P. 26
이주연 컬럼
윤지용 작가의 ‘체스맨 킹’ :
현대사회의 보편적 불평등성
글 : 이주연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의해 폰이 조종된다는 것을 뜻한다.
각각의 구조는 어떤 의미인가?
가장 하단부에 위치한 회전체는 체스가 바로 연상되도록
체스맨에서의 말의 형상을 가져왔다. 그 위 물결무늬는 결
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흘러가고 순환하는 일상의 반복
과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그 위 흑백으로 분할된 격자무
늬의 체스 보드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구분하는 현대사회
이며, 이 사회를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존재는 사회구성
원으로서의 체스맨 나이트이다. 그 위는 도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서 벽돌을 선택하였다. 벽돌은 개체이지만 건
물을 구성하는 일부를 뜻하는데, 이는 개별로 존재하지만
전체로 구성되지 못하면 소외되어 파편처럼 나뒹굴 수밖
에 없는 도시인을 상징한다. 현대사회를 수직 구조로 볼 때
구조물의 최상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권력자로서의 체
스맨 킹을 맨 위에 위치시켰다.
체스맨 킹을 체스맨 피스의 조형성을 위하여 다른 위치에
놓는 것을 고려해본 적이 있는가?
현재 작업들에서 보이는 인물의 위치가 주로 상부에 위치
해 있지만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
며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따라서 다른 조합도 고려 가
능하다.
기존 작품들을 체스 보드 위에 전시하기도 하는데, 체스맨
피스로 고려하여 작업한 것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나, 작업을 구성하면서 작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면 체스 보드를 이용하기도 한다.
체스맨 시리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말해달라.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그 성공이 행복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외로운 존재로서의 킹의 모습도 표현하고자 하였
다. 못가진 자는 가지려 하고 가진 자는 또 다른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서로가 각기 다른 결핍
Chessman_King, 43×43×(h)114cm, 석기질, 자기질 점토, 2020 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공
격과 방어를 하며 상대의 말을 잡아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
는 것이 체스 게임이고 이것이 게임의 룰인데, 이러한 형식
윤지용 작가의 작품은 이전 컬럼 (‘Social Skin’: 일상의 기준이 만들어낸 사회 적 법칙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먹이사슬과도 닮아 있다. 결국 도시
적 착각/2017년 3월 이주연 컬럼)에서도 다룬 바 있는데, 사람의 외양으로 그 혹은 사회라는 거대한 체스 보드 위에서 견제와 방어를 병행하며 살아가는 체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러한 편견과 착각, 시각적 정보에 스맨이 되어버린 도시인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의존하는 인식의 편협함 등을 논했었다. 최근 개인전을 개최한 작가를 다시 만
나 가장 흥미로운 <체스맨 킹> 작품에 대해 물었다. 그의 작품은 유쾌하게 세상을 찌르는 해학성을 지니면서도 때로는 암울한
현실의 끝단에 내몰린 듯 불안함과 냉소적인 독설을 던진다. 좌우로 정렬된
체스맨 킹이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Social Skin’에서도 감지된 이런 느낌은 수직으로 정렬된 체스맨 시리즈에도
그는 현대사회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로 구조물의 상부에서 아래를 내려다 등장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기능론적 관점이 아닌 갈등론적 관점에서 현대사
보고 있다. 과거 왕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 왕관/왕좌라 한다면, 킹의 의자는 회의 보편적 불평등성이 폐쇄적 계층 구조에서 유발됨을 고발한다. 그러나 각
바로 왕이 지닌 권력/지위를 상징한다. 킹은 6개의 체스맨(킹, 퀸, 비숍, 나이 계층과 계급에서의 인간적인 고뇌도 함께 공유함으로써 무엇이 현대사회를
트, 룩, 폰) 중 장기의 ‘졸’에 해당하는 –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하여 스스로 유지시키고 있으며, 현대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
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한 - 폰(Chessman Pawn)을 쥐고 있는데, 바로 킹에 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