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전시가이드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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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 컬럼
백자대호, 달항아리, 출처-문화재청(보물제1441호)
는 용어의 ‘청(靑)’은 녹색을 아우르는 푸른색의 의미를 갖고 있어, 청자의 색 기보다는 내적인 청결을 중시하고 질박하고 검소한 삶을 더 우선시 한다. 따
은 푸른색이 아니라 녹색 계통의 색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서 조선의 유물 중에는 화려한 것 보다는 소박하고 절제의 미가 돋보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조선기에 백자의 단순, 소박, 생략감이 있고 더 나아
백자(白瓷)는 자기(瓷器)중에 가장 발전된 종류라 할 수 있으며 청자의 소성온 가서 여유와 익살이 표현되어 지는 것은 시대적 배경의 직접적인 영향에 있다
도 보다 조금 높은 1300℃~1350℃의 온도에서 번조되어 자기가 된다. 조선시 할 것이다. 15세기 초 세종대왕의 명에 의해 왕실에서 사용하던 화려한 식기
대 백자의 태토로는 고령토(高嶺土)라고 불리는 백토가 주로 쓰였으며 청자 들이 모두 백자로 대체되었다. 그 후 왕실에서 관요(官窯)를 설치하여 백자의
에 사용되는 흙보다 백자에 사용되는 흙의 순도가 더 높은 태토를 사용하였음 대량생산이 이루어 지고 조선기 백자의 전성기에 이르게 된다. 백자는 크게 순
을 알 수 있다. 백자의 시유시 유약은 원래 무색투명하지만 요(窯)속에서 구운 백자, 청화백자, 상감백자, 진사백자, 철회백자 등으로 시유의 재료와 소성의
후에는 유약의 성분이나 가마의 조건에 따라서 독특한 유색(釉色)을 띄게 된 과정에서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순백자는 도자기에 아무 문양도 그리지 않은
다. 조선시대에는 우윳빛이 도는 유백색(乳白色), 약간 파르스름한 색을 머금 ‘민’ 백자이며 청화백자는 코발트빛으로 파란 문양이 표현되어진 것이며, 상감
은 청백색(靑白色), 푸른 기가 짙은 청백색 등의 유색이 있었고, 설백색(雪白 백자는 상감청자와 같은 방식으로 백자 표면에 상감기법을 적용하여 표현된
色)의 백자도 다수 생산되었다. 태토는 순백색이어야 하며 태토와 유약이 분 도자기 이다. 철회백자는 철분안료를 써서 그 안료가 소성 중 다갈색이나 흑
리되는 박락(剝落)현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유약에 빙렬도 없어야 하고 표면 갈색 계통의 색으로 산화되어 그려진 문양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고 진사백자
을 금속으로 긁어 보아도 흠이 나서는 안 되며 반투명질이어야 한다. 조선기 는 말 그대로 빨간 진사를 써서 도자기 표면의 그림이 붉게 나타나는 그릇의
대표적 도자기는 단연 백자를 이야기 할 수 있으나 백자가 단지 청자보다 모 제작 기법을 말한다. 이 중에 조선시대의 대표적 사상이 잘 표현되고 전승되
양이나 예술적으로 앞선 그릇이었기 때문에 조선기에 유행 했다기 보다 유교 어 내려온 도공의 혼이 담겨있는 것은 순백자이다. 민 백자로 어떠한 장식이
적 이념으로서의 접근에 있어서 시기적으로 적절 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외부 나 그리는 행위를 첨하지 않은 순백의 소박한 도기류는 여타 다른 나라에서는
적으로 중국 도예가의 영향이 미친 점도 부정 할 수 없는 점이다.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순백의 투명유에만 의지 한 채로 중국이나 유럽의 도기
류보다 은은하고도 고고한 미를 발하는 조선기의 순백자의 아름다움은 단순,
당시 중국(명)은 송 대에 일어난 성리학의 영향을 국시(國是)로 받아들여 유학 소박, 생략감의 조선 도공들의 얼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더하여 조선 백
(儒學)이 부흥하게 되는 시기였다. 성리학의 사상은 밖으로 화려하게 드러내 자의 하얀 빛깔은 하나의 백색이 아닌 다양한 백색의 수많은 얼굴로 나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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