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전시가이드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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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다니엘 리베스킨트,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사옥, ⓒADAGP (우) 인근설치 조형물, 강남스타일












            운 시기에는 특히나 더할 것이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9·11테러로 무너진 미     우리에게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현대산업개발 사옥』의 설계자로 알려졌지
            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재건축 설계공모에 당선되어 세계에서 가장 유        만, 국내의 일반인들은 물론 예술가들 조차 그의 삶과 건축에 대해서 잘 모를
            명한 건축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만일 매튜 프레더릭의 주장대로 "건축가는      것이다. 반면에 인근에 설치된 손목이 잘린듯한 형태의 <강남스타일>이란 제
            늦게 피는 꽃"이라면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경우도 그의 말을 보충해 준다. 자      목의 브론즈 조형물에는 익숙해있다. 그러나 뭔가 리베스킨트 건물과 어울리
            신의 첫 건축을 짓기 위해 50이 넘도록 그는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     지 않고 괴리되어 있다. 여기서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남긴 대표작인『베를린
            을까? 건축가란 어쩌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는 선에 대      유태인 박물관』이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태인을 상징하듯 ‘다비드의 별’ 형
            해서 “선의 개념은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같이 고도로 신비롭고 은유적인 개       상으로 인하여 원초적인 인류애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시 말하자면, 단순
            념을 가진다. 선은 기하학과 건축적 현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려진 선들은 현      히 일시적인 유행과 트랜드를 그럴듯한 속물근성으로 형상화시켜 대중들의
            실 속에서 하나의 벽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건축에서 벽에는 항상 선이 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가벼움과는 원천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기왕지사 ‘속
            재한다. 나는 건축에서 선이 그 존재와 부재 속에서 존재한다고 본다. 또한 선     물’을 언급한 김에, 영화 <타짜>의 하이라이트를 떠올려 보자. 주인공 고니가
            은 시간과 관계한다.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시간의 움직임을 기      스승의 맞수였던 아귀와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공연히 고니의 속
            초로 하고, 그 움직임을 펼치고 통합하는 것은 선”이라고 강조한다. 다니엘 리     임수에 걸린 것으로 착각한 아귀가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라며 협박하자,
            베스킨트는 직선이 아니라 사선을 주로 사용한다. 건축물의 매스나 모서리 부       은근슬쩍 새로운 도박을 제안하면서 “이 패가 단풍이 아니라는 것에 내 돈 모
            분에서조차 직각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다른 각을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사       두하고 내 손모가지를 건다. 쫄리면 뒈지시던지”라며 맞받아친다. 물론 누구
            선을 더욱 부각시킨다. 대부분의 건축물은 사각 입방체이고, 근대 건축 이후       라도 이 영화를 감상했다면, 어떤 반전으로 결말이 났는지 기억하시리라. 이
            의 건축은 지붕까지 평평하고 매끄러워 세계는 사각형의 세상으로 뒤덮여 있        조형물을 대할 적마다, 하필이면 손모가지가 잘린 모습에서 탐욕스런 속물의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우 중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각형의 세계, 즉 직    최후가 연상되는 것이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듯 하다. 속물들은 늘 이런
            각의 세계에 그의 건축은 반기를 든다. 리베스킨트의 선에 있어 궁극의 완성       식으로 마지막 승부 처에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한다 치고, 느닷없이 닥친 ‘코
            은 모든 것을 소거하고 난 후 건축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나 정서들이다. 진정      로나 사태’로 인해 매일매일 전쟁 치르듯 살아가야 하는 우리 미술인들은 과
            리베스킨트의 선은 건축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구축한다. 일견 어지럽고 혼       연 무엇에다 올인 해야 할지. 아무쪼록 우리 미술인들의 건강한 영혼이 ‘새로
            란스러워 보이는 선 뒤에 남는 것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이        운 정신’으로 거듭나,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그저 도중에 포기하지 않기를
            다. 심지어는 질서가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다시 그는 사선의 건축에서, 보다     간절히 염원해 본다.
            입체적인 수정체의 건축으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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