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전시가이드 2020년 07월
P. 34

김구현 컬럼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대표 건축물, 베를린 유대 박물관 ⓒADAGP






         에스프리 누보
                                                        다니면서 그림에 푹 빠진 그는 뉴욕에 있는 미국 최고 건축대학인 쿠퍼 유니
        새로운 정신                                          언에 들어가 리차드 마이어와 피터아이젠만을 사사했다. 그는 항상 건축가란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가라는 명제에 천착한다. 다종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겠
                                                        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건축가는 사용자의 요구 사항을 건축 환경에 반영
                                                        하는 사람이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또한 건축가이자 교수인 매튜 프레더릭은
        글 : 김구현(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에서, "건축가는 늦게 피는 꽃이다"라는 꽤 흥미
                                                        로운 정의를 내리면서 "나이 오십이 되기 전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한 건축
                                                        가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루이스 칸느는 50대에 이르러서야 명성을 얻기
        1959년 미국 이민 후 귀화하여 대학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유태인 어머니가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도 50세가 되기 전까지는 건
        진로에 대해 조언해 준다. 이 청년은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지만 건축에 재능       물을 지어 본 적이 없다.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 이론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이 있었다. “예술가는 건축을 못하지만 건축가는 예술을 할 수 있단다.” 어머     고백했듯이 자신의 작품이라 할 만한 것은 52세에 지어진 ≪베를린 유대 박물
        니의 단 한마디에 음악과 미술 대신 건축을 전공하기로 결심한다. 이 청년이       관≫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다니엘 리베스킨트
        바로 오늘날 세계적인 낙천주의 건축가로 거듭난 다니엘 리베스킨트다. “나는       는 자신의 최고 걸작 베를린 유대 박물관의 건축 개념을 'Between the lines'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포기하는 방법을 가르쳐        라고 했다. 하지만 사전에 나오는 숙어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냥 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니엘 리베스킨트 고유의 인생 철학은 고스란히 그       자 그대로 '선과 선 사이에서' 혹은 '선들 사이에서'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가 남긴 모든 건축물에 스며들어가 있다.                          이다. 그의 초기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이나 선들이었다. 그것이 ≪베를
                                                        린 유대 박물관≫이든, ≪펠릭스 누스바움 미술관≫이든, ≪포츠담 광장≫ 계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1946년 폴란드의 로지에서 태어났다. 홀로코스트(유대       획안이든, ≪베를린 도시 경계≫ 계획안이든 항상 일관성을 지켜왔다. 그것이
        인 대학살)를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경험한 부모님 밑에서 자람       파편들의 조합이든, 여러 선들의 결합이든, 지그재그이든 명백히 선의 특징들
        으로써 평생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다. 11살이 되던 해, 그의 가     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20세기 3대 건축계의 거장 가운데 한명인 프랭크 게리
        족은 시국이 불안정하던 폴란드를 떠나 이스라엘로 간다. 뛰어난 아코디언 실       는 건축가의 자질 혹은 덕목을 '열정'이라고 강변했다. 아마도 우리는 여기에
        력으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이스라엘 문화재단≫의 장학생으로 뽑         한 가지를 더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내'이다. 늦게 피는 꽃이기에 오랜
        히기도 했다. 1965년에 미국인으로 귀화했고 ≪브롱크스 과학고등학교≫를        시간 꺼지지 않는 기다림의 힘, 인내라는 덕목이 필요하다. 요즈음 같이 어려


        32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