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2019년08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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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꿈(녹색 바탕의 라파엘라), 1927, 2011년 11월 2일 뉴욕 소더비 경매, 약 850만 달러 낙찰 (우) 여성 악사,
                                                            1929, 115.8×73cm, 2018년 11월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 약 900만 달러 낙찰

                          ADAGP 글로벌 저작권자로 등록되었다는 의미는 곧, 전 세계 조형미술 생태계에 작가 고유의 ‘개인 브랜드’를
                          정통 계보에 올림으로써 시장 경쟁력 및 인지도의 확장여부를 투명하게 추적할 수 있는 기대 효과를 동반한다.


            심을 한껏 불지폈었다. 20세기 양차 대전 사이 기간인 1920-30년대에 반짝    이 유행이 당대의 트랜드였던 만큼 타마라는 그녀가 그리기 좋아하는 고전풍
            등장했다가 자취를 감춘 <아르데코> 미술 운동은 본래 파리와 뉴욕을 연결하       여성 누드 그림을 피카소식 큐비즘 양식과 섞어서 그려보기도 했는데, 예상대
            며 유행한 실내 장식과 디자인 분야의 응용미술 운동이었지만, 정작 이 『아르      로 사교계와 부유층 그림 고객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테코』전을 통해서 현대인들 사이에서 대중적 주목을 받으며 재각광을 받기 시
            작한 동기 유발이타마라드렘피카의 그림들을 통해서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ADAGP글로벌저작권자]로써의타마라드렘피카는, 당대의 파리 여러 소규모
                                                            개인 화랑은 물론 프랑스 고유의 사교미술의 장인 ≪살롱 전≫ 및 개인전 출
            <아르데코> 미술에 대한 대중 관객들의 관심을 반영하기나 하듯, 영국 런던       품에 열중했다. 그같은 전시 발표 기회를 통해서 사교계에 발을 넓히고 자신
            의 ≪왕립 아카데미 미술관≫에서는 서둘러 미술 전시 사상 처음으로 『타마        의 그림을 주문해 줄 후원자를 찾는 일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못지 않
            라드렘피카의 개인전』을 기획하여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이에 그치지 않       은 중대한 전략이었던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파리와 뉴욕을 오가면서 실질적
            고 2004년 5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전시한 후 같은 해 9월 중순부터 오스트    인 가장이 된 그녀의 입장에서는 궁극적으로 그림그리는 일은 단순히 예술로
            리아 빈으로 옮겨져서 2005년 1월초까지 지속된 순회전을 통해 그녀의 브랜      여가를 삼은 낭만과 자기성취의 취미활동이라기 보다 생계 유지라는 절박하
            드를 세인의 뇌리에 각인 시켰다.                              고 실용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직업활동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유작들을 상속하거나 양도받은 가족 및 글
            오늘날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당시 20세기 전반기 서      로벌 미술시장의 관련 당사자들을 위해 <재판매권(추급권)>을 끝까지 고수
            양 근대 미술을 중심지인 파리에서 앞다투어 전개되고 실험되던 온갖 미술 사       한 이유는, 자신의 소신을 지킨다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1차 시장(화랑)이나 2
            조와 유행을 손금보듯이 알고 있던 앙드레로트는타마라가 파리 상류층 미술         차 시장(경매)를 통해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게 될 잠재적인 컬렉터의자산 가
            애호가들과 사교계 인사들의 입맛에 딱 맞는 그림 양식을 찾아내는데 커다란        치를 증대시키는 기대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의 사후 70년 동안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타마라는로트의 아틀리에에서 사사를 받고 있던 때        후손에게 상속된 유산이 거래될 적마다 적립되는 ‘부가 가치’는, 아직까지 <추
            는 바로 20세기 미술의 거장인 피카소가 피사체를 수많은 정방형 형상으로        급권>의 법안 도입이나 인프라 조성이 시기상조인 우리 화단에게 자못 시사
            분해해석해, 이른바<종합적큐비즘>을 한창 실험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는 바가 크다고 확신한다.

            1)  라틴어로 ‘만인을 위한’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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