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2019년08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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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on_19071, 40×40cm, 아크릴
또는 제시된 어떤 것들로 언어의 구체성, 과학의 검증논리와 차원을 달리 한
다.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로 보면 실
재의 연 줄기와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화면의 연 줄기는 같은 곳에서 출발
했지만 작가의 연 줄기는 이내 맥락을 벗어나 말 할 수 없는 다른 너머로 향
하고 있다. 하지만 설명과 전달, 그리고 대화를 위해 만들어진 언어가 자유를 relation_19072, 90×72cm, 아크릴
주는 만큼 역으로 언어가 조명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것에서는 오히려
제약이 되어 한계를 더 강화하듯 마른 연 줄기의 실재는 작가의 가슴과 이념
에서 돌출하듯 나온 그것들과 아직은 조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 섞여 작
가의 제시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사유의 한계 언저리에서 방향을 상상했던 선들은 어딘가에 있었고 그는 그것을 안압지의 반짝거리는 수면에
잡지 못하고 있다면 혹은 표현의 정도가 미흡하거나 효과적인 기법의 정립이 서 발견했다. 그 순간은 아마 그에게 안압지 수면이 바다의 그것이었을 것이
미진하다면 이번 작업의 화면들에서 방향을 조금씩 탐색하며 앞으로 나가면 다. 그렇게 마르고 비틀어진 연 줄기들은 그에게 선으로 다가와 그의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야기가 되고 모티브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 작업들은 이미 색이 칠해졌거나 형상들이 채워졌던 캔버스의 천 작가 김미숙에게 선은 항상 설렘처럼 다가오는 존재이다. 수면에 그어진 선들
을 일정한 크기로 조각조각 잘라 장난감 퍼즐그림과 달리 다시 또 다른 캔버 처럼 마른 연 줄기들이 화면에 자리를 잡고 흔적처럼 존재하는 이야기를 다시
스 평면에 이식하여 전혀 다른 형상성을 구현하는 형식의 일종의 조각들이 헤 이어나가려 하듯 바탕의 여백을 지나 여기 저기 구부러져 있다. 어딘가를 향
쳐모여 ‘재집합된 형태’였다. 이것을 이미 어떤 장소에 정주하고 있던 색과 형 해 가듯 방향성을 지닌 선들은 이제 곧 출항 할 모험선의 채비를 알리는 힘찬
을 다른 공간에 작가의 의지로 다시 이주시키는 이동의 행위와 그 결과로 정 고동의 울음같이 그에게 미지의 세계를 가리키는 시그널처럼 반짝거린다. 연
의한다면 원래의 화면과 구조는 흔적만 남은 역사유적처럼 해체된 이야기로 줄기의 헐 벗듯 마르고 비틀어진 모습에서 해방과 훌훌 털어버린 뒤의 자유
남게 된다. 여기에는 외부 세계의 어떠한 것도 재현되기를 원하지 않고 사각 를 느낀 그에게 밝고 화사한 파스텔 색조의 화면은 이제 곧 미끄러지듯이 떠
형을 기본으로 한 기초적 도형이 전부인 회화의 완성을 의도한 20세기 초 러 나 갈 모험선을 담은 푸른 바다일 것이다. 찬연한 여름 햇살 아래 만개했던 연
시아 작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처럼 형상의 포기 또는 거부가 내재되어 있 꽃의 풍성한 꽃잎들을 하나씩 잃어 버리고 종래에는 앙상하게 마르고 비틀린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말레비치와 달리 김미숙의 화면은 꼴라쥬 기법처럼 원 형태로 남아 겨울 초입에 들어선 가느다란 연 줄기는 새로운 이주를 위해 그
래 흔적의 중첩으로 새로운 형상성을 도출하는 형상의 역사가 지속된다. 이러 마저도 버리고 수면위에서 화폭위로 이동을 한다. 이미 존재했던 화면들이 조
한 맥락에서 김미숙 작가의 현 작업 의중에 자리한 조형적 물음은 그가 보았 각나 한때 전체를 형성했던 형과 색들이 단편으로 제각각 흩어져 다른 캔버스
던 마른 연 줄기의 실재에 겹쳐지며 하나의 실루엣을 드리우는데 그것은 조 의 평면에 이주 한 것처럼 수면의 마른 연 줄기들은 김미숙만의 모험선에 실
형요소 중 하나인 선에 관한 것이다. 마른 연 줄기들이 그 처연함에도 불구하 려 다른 바다로 이주를 하는 것이다. 아직은 그 바다가 설익은 푸름이고 거칠
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듯 어디에 구속될 여지도 없는 단신의 모습으로 하 게 여울지는 파도일 수 도 있겠지만 훼척골립의 아픔을 간직한 마른 연 줄기
얀 여백에 그어진 선들처럼 수면에 그어져 작가의 눈에 들어 온 것이다. 선은 들은 아라연꽃이 700여년의 시공을 뛰어넘듯 그렇게 다시 발아하고 만개할
점이 연속으로 이어져 이루어진 자취이다. 선은 대부분 형태를 이루는데 소용 것이다. 물론 바다에서 연꽃은 필 수가 없다. 그러나 김미숙의 바다에서는 화
되지만 칸딘스키의 선들처럼 그 스스로 조형성을 발현하기도 한다. 김미숙이 사하게 피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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