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전시가이드 2020년 03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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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작품 속을 유영하는 관객들
는 나 / 또 내가 빚어내는 나”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나”로 나아가는 공통 체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노래로 전하는 메시지를 공감·지지하는 세
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비로소 앤 베로니카 얀센스 계 유명 현대미술가·큐레이터들이 ‘커넥트(CONNECT·연결)’를 주제어로 마
의 안개를 통해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를 지우고 비로소 내면의 ‘에고’를 강 련한 이번 국제 전시프로젝트는 음악을 통해 강조해온 다양성의 존중, 소통과
렬하게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다. 앤 베로니카 얀센스는 1956년 영국 폭스톤 연결, 연대의 의미가 현대미술 작품과의 정신적인 융합을 통해 새롭게 거듭났
에서 태어나 미술사를 공부한 후 벨기에 브뤼셀 ≪라 캉브르 국립시각디자인 다. 국경과 인종·문화를 뛰어넘어 음악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학교≫를 졸업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인간이 빛을 통해 인식하는 실험에 BTS가 <현대미술>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전세계 아미(방탄소년단 팬)들
몰두한다. 이 작업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리옹 시에 위치 과 함께 국제적으로 자신들의 ‘브랜드 영향력’을 더 확장시킬 수 있었다. 굳이
한 ≪빌라 질레≫에서 빛이 ‘유리’라는 투명한 요소를 통과하거나 ‘거울’이라 부연하자면, 소극적 의미의 음악과 미술이란 예술 분야 사이의 화합이라기 보
는 반사적인 요소를 통과할 때 ‘색채와 연기’가 공간을 통해 일어나는 <분산 다, 현대기술과 민주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분열·대립·갈등이 더
및 굴절 효과>에 대한 작업에 전문적으로 빠져든다. 2001년 불투명한 물질로 욱 심화되는 상황에서 각국의 작가 및 큐레이터들이 BTS의 음악철학에 뜻을
이뤄진 환경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면 그들 스스로 색채의 안개에 빠져드는 함께 하면서 이뤄진 시·공간을 초월한 ‘21세기형 데탕트(긴장완화) 무대’가 아
『블루, 레드, 옐로와 빛의 게임』을 시작으로 다양한 동일 계열의 실험 작 시리 니었을까 싶다. 마치 그 상징성을 부여해 주듯이,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작품
즈가 이어진다. 2003년에는 또 다른 계열의 안개를 사용하여 『자마이카 컬러 내부로 들어서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짙어, 관람객들
플러스 쥐스틴 양을 위한 한가지 색채』와 2007년 『앙베르의 뮈하』를 선보인 은 앞 사람과 벽에 의지해 전시공간을 한 바퀴 돌아 나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
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그녀는 빛에 현혹되거나 이따금씩 폭발적인 빛에 노 에 한국 전시를 총괄 감독한 이대형 디렉터는 “안개 속에서 관람객들은 서로
출되기도 하고, 망막을 집중 공략해 현기증을 유발시키기도 하는 실험을 거듭 의지해야 길을 찾을 수 있어 인간은 상호의존적이란 사실을 일깨우는 작품”이
한다. 때로는 빛이 나는 책자를 활용하여 번쩍임이나 포화 상태를 만들어 빛 라 강조한 것이다. 현재 우리 미술계가 처해있는 생태계 환경 자체도, 느닷없
의 속도를 실험하는 등 다양한 ‘물리적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앤 이 ‘검은 백조’마냥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해 뿌연 안
베로니카 얀센스의 작업은, 결국 가장 최소한의 의미와 형태에 반하는 기념비 개 속을 거니는 듯하다. 아무쪼록 앤 베로니카 얀센스가 2014년 ≪아트 바젤
적인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에 출품했던 작품 『베타 형 변광성』과도 같이 환하게 밝은 빛이 암울했던 우
경계를 지키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일종의 시적인 봉사를 베풀어 주는 매우 리 미술시장 곳곳에 비춤으로써 길을 잃고 헤매던 작가들이 ‘새로운 정신’으
이타적인 작품인 셈이다. 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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