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전시가이드 2025년 06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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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얼-모시, 163x130cm, Canvas with mixed





                               2025. 6. 3 – 6. 8 강릉아트센터 (T.033-660-6800, 강릉)



                              최 화백의 작업은 다산 정약용의 일화도 떠올리게 한다. 강진 유배 중 아내가 보내온
                                   낡은 치마 여섯 폭으로 자식들에게 그림과 글을 남겼던 이야기처럼,
                         최 화백 역시 찢기고 해어진 모시 자락 위에 어머니의 삶과 기억을 새기며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한다.




         씨실과 날실의 인생이야기                                  짐이기도 할 것이다.
        최금란 개인전                                         대개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인생의 날들은 불투명하고 잡다한 걱정과 불안이
                                                        섞인 채로 하루하루 이어진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그의 아
                                                        내는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치마 6폭을 보냈다. 정약용은 아내가 보낸 치마
        글 : 이기운 목사(회복의 집)                               폭을 가위로 잘라 네 개의 첩(帖)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경계의 글을 써주었
                                                        고, 나머지 천으로는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을 위한 그림과 편지를 썼다. 매조
                                                        도(梅鳥圖)이다. 최금란의 작품은 정약용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수 많은 수상 이력이 있고 국내외 많은 곳에서 초청 작가로 활동해 온 최 화백     때로는 찢어지고 해어진 모시 자락에서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며 사랑과 그리
        의 40번째 개인전이 강릉에서 개최된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움의 상징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 같다.
        대관령의 숲길과 들꽃으로 위로받으며 그녀의 정신과 화가로서의 역량은 더
        욱 깊어지고 확장되었다. 이제 목회자의 삶을 은퇴하고, 세계적인 화가로서        최금란 화백의 눈길은 깊어지고 자유로워졌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강릉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고 했는데, 그녀는
                                                        바람에 펄럭이는 삼베 너머에서 어머니를 보고, 그 아래 놓인 소박한 다완에
        최금란 화백은 고요한 마음과 집요한 정신으로 화폭 위에 모시와 베를 수놓        서 친구를 보고 스승을 보며, 상처받은 영혼을 본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슬
        는다. 세필로 그려내는 작품들은 대작은 물론 비교적 작은 작품도 몇 개월의       그머니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집중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장인의 정신을 넘어서 가히 수도자와도 같은 예
        술혼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최 화백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흉터진 마음에 고운 모시 천을 덮어주
                                                        는 것 같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길이며,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기도 할
        사람들은 인생을 베 짜는 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씨실과 날실이 엮여서 천을       것이다.
        이루듯이 인생도 그러하다. 씨줄과 날줄을 하나씩 그을 때 그의 날들은 선명
        해지고, 그 하나하나의 선에는 삶의 발자국이 새겨지며, 그와 관련된 사람들       최금란 화백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며 기도하고 정
        과 삶의 여정의 추억이 새겨진다. 그렇게 직조된 베와 모시는 은은하게 그 뒤      진한 오랜 세월이 쌓여 있다. 르누아르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
        의 풍경을 감추기도 하고 비추기도 한다. 그것은 사랑이며 그리움이며 삶의        는다"고 했는데 그녀의 인생과 그림이 그러한 것 같다. 고통은 지나가고 이제
        통찰력이 된다. 또한 그것은 지나온 날들의 반추이며, 살아갈 날들에 대한 다      더욱 수많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탄생시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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