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전시가이드 2020년 05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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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현 컬럼
트레이시 에민, 다리 III, 2007, ⓒADAGP-DACS
에스프리 누보 다. 두 번의 낙태 수술과 한 번의 유산을 겪었으며 이는 폭음과 흡연, 심한 우
울증, 그리고 자살 시도로 이어졌다. 그녀는 성폭행과 지속적인 성학대로 인
새로운 정신 한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으로 예술을 택하게 된다. 에민은 "나의 삶
이 곧 예술이고 나의 예술이 곧 나의 삶이다"라 말한 바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생각, 철학 등을 작품에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너무나 솔직하
글 : 김구현(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여 어떨 땐 무례하기까지 할 지경까지 자신을 내몰았다. 한마디로 그녀는 자
신의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의 길
은 바로 그녀의 초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그녀의 자기 고백적 성격의 대표
작품들을 통해, 어떻게 그녀가 스스로를 치유했는지 알아보자. 그녀의 정체성
1997년 12월 28일에 개최된 “찰스 사치의 소장품” 전시회가 센세이션을 일으 을 대변하면서『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이라는 도발적인 제
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시회 타이틀 또한 『센세이션』이었다. 당대를 대표 목과 함께 별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텐트』라고도 불리는 작품은, 트레이시 에
하는 영국 현대미술 컬렉터인 찰스 사치가 소장한 청년 악동들의 기이한 작품 민의 대표적인 설치 물이다. 데미안 허스트, 사라 루카스 등 당시 잘나가던 ‘영
들로 이루어진 이 전시회가, 보수적인 학풍으로 정평이 난 ≪왕립 미술 아카 국출신 청년작가그룹’인 【yBa】작가들과의 단체 전시에서 트레이시 에민은 이
데미≫에서 개최되었기에 여러모로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깔끔하기 그지없 작품을 소개하면서 당대 영국 화단의 화려한 주목을 받게 된다. 텐트 내부에
는 회원들의 반발 섞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출품된 한 여성 작가의 텐트 설치 <아플리케 기법>으로 현재까지 자신과 잤던 사람 102명의 이름을 붙여 놓은
작품이 평단과 기자들에게 어필하면서 폭발적인 관심과 반응을 불러 일으켰 작품이다. 텐트 안에 꿰어진 이름들은 성관계를 맺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한 침
다. 그녀의 이름은 트레이시 에민이었다. 대에서 잤던 모든 사람들을 포괄한다. 자신의 가족, 친구, 애인 그리고 잠시 동
안 몸을 공유했던 자신의 아이 이름까지도 다 새겨 넣었다. 이듬해인 1998년
트레이시 에민은 1963년 7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터키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 에는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나의 침대』가 대중에게 소개
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엔버 에민과 어머니 팸 카신은 되었다. 트레이시 에민 하면 이 설치 물이 떠오를 정도로 그녀에게 유명세를
불륜 관계였으므로, 그 가정이 제대로 존립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겨준 작품이다. 에민은 이 작품 덕분에 <터너 프라이즈> 후보로 급부상 했
트레이시 에민의 어머니는 호텔 여종업원이나 나이트 클럽 등에서 일하며 에 으며 일반 대중에게 그녀의 이름을 인식시켰다. 이 작품이 더 유명해진 것은 <
민과 그녀의 남동생을 키웠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애인에 터너 프라이즈> 전시회 기간 중 중국인 청년 2명이 에민의 작품 침대 위에서
의해 수 차례의 성 학대를 당했으며, 13세에 강간을 당한 후 집을 나와 방황한 거침없이 뛰놀았던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사전에 약속된 퍼포먼스가 아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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