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3년 06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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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Hans Hartung, T1947-10, Oil On Canvas, 146x97cm, 1947 ⓒADAGP  (우) 안복순, Sprout, Acryic On Canvas, 53x45cm, 2022 ⓒADAGP









            『뉴런(Neuron)』의 활성화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난히 촉이 좋은 예술가  던 미술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현대추상미술>의 거장
            라면 당연히 결함 요소가 내재된 ‘고립’을 배제할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들이었다. 특히, 국내 화단과 연계해 2014년 충남 대전에서 처음으로 소개되
            완전 무결한 감성으로 승화시켜야 마땅할 것이다. 안복순 작가는 바로 이러한       었던 작품들은 물리적 가치뿐 아니라 예술적•상징적 가치도 가히 세계적이
            점에 착안해,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을 완성했다. 필자는 단도직입적으       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일찍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차이를 넘어
            로 안복순 작가를 독일태생의 프랑스 화가 한스 아르퉁(Hans Hartung)의『현  서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동시에 독창적인 미의 세계를 확고하게
            대적 발아』로 부르고 싶다. 한스 아르퉁은 독일 라이프찌히에서 출생했다. 피      구축했다. 직•간접적으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이들은 전후 유럽의 공허함
            에르술라주, 제라르 슈네데와 함께 2차대전 후에 탄생한 <프랑스 서정추상미       과 우울을 겪으며 서구의 합리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그 동안 중시되지 않았
            술사조>의 대표작가이다. 한스 아르퉁의 그림과 석판화는 주로 독특한 소용        던 개인의 자유와 주관 그리고 표현을 중시했다. 아마도 안복순 작가는 이들
            돌이, 낙서 및 해치 표시로 만들어졌으며 안료를 긁고 지우고 다시 적용하여       의 고귀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현대추상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 ‘연결’
            만들었다. 1947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50년대 후반에 와서는 거   고리 역할에 충실 하는 중이 아닐지.
            의 단색을 위주로 긴 리듬 브러시 스트로크 또는 스크래치의 구성으로 제스
            처적인 표현기법으로 인정을 받았다. 2차 대전 중 외인부대에 입대하여 오른       결론적으로, 안복순 작가는【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회원 작가들 가운데서
            쪽 다리를 잃게 되고, 전쟁이 종료되는 1945년에 프랑스로 귀화하며 중단했      도, ‘인간과 생명’의 상관 관계를 <자연의 축제(Nature Festival)>에 빗대어 표
            던 회화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기하학적인 추상보        현하는 자유분방한 작가임을 자부한다. 한 마디로 ‘사고력’이 비상하는 순간
            다는 내면을 표출하며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는 미술이 시작되고, 제스처를 통       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녀의 감성을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드러
            한 작가의 행위가 곧 작가의 내면이라 생각한 한스 아르퉁은 이에 집중한다.       내내는 것이다. 때로는 바람을 주입시킨 풍선처럼 날아 오르다가도 어느덧 생
            어릴 적부터 번개와 천둥 등 순간적인 에너지 분출에 관심이 있던 그는 선과       각의 영감이 그녀의 ‘화폭’으로 착지하면서 자유로운 ‘이데아(idea)’ 가 순결한
            색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추상미술의 한 영역을 장식하         캔버스에 무형의 흔적을 남기는 여정을 즐긴다. 마치 그녀의 고뇌를 이미 선
            였다.  혹자들이 그의 작업을 일컬어 ‘무의식의 제스처’ 회화라고 부르는 이유     점했던 대선배격의 한스 아르퉁이 그러했듯이, ‘내면의 충동’이 ‘자연의 교감’
            이기도 하다. 1960년《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스 아르퉁은 국제그랑프리를        을 통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감성과 감각을 ‘표현 충동’에 못 이겨 화면에 삭
            수상했다. 한스 아르퉁의 서정적 추상 회화는 미국의 많은 젊은 화가들에게        여낸다. 이미 ‘정형화’시킨 기존의 딱딱한 ‘리듬과 형식’을 철저히 배제한 일종
            영향을 미쳤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에게     의 『초서체』에 가깝다고나 할까. 역동적이고 화려하게 분출하는 ‘색채의 향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은 오히려 진지할 정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안복순 작가의 화
            여기서 국내 화단출신 거장과 관련해 한가지 주목해야 할 움직임이 있었다.        려한 프로필에 비해 현재의 그녀는 의외로 소심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아닌
            1960년대 파리에서 이응노 화백과 조우한 <유럽 추상미술>의 대가 한스 아      가 싶다. 아무쪼록 필자는 안복순 작가가 자신의 의지대로 ‘분출과 흡입’을 거
            르퉁, 피에르 술라주, 자오우키 네 작가의 예술세계를 다룬다. 각각 한국 • 독    듭하는 동안만이라도 아이처럼 순수한 동심에 젖어 한없이 빠져들기를 진심
            일 • 프랑스 • 중국 출신의 이응노, 한스 아르퉁, 피에르 술라주, 자오우키는    으로 기원한다. 아울러서 바람직한【ADAGP 글로벌 저작권자】의 일원으로써,
            각각 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1960년대 이후 파리에서 활동하며 당시 유럽화      그녀 자신의 심상을 고스란히 응축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정신’이 풍성한 열
            단에 넓게 퍼져있던 『앵포르멜(Informel)』, 즉 ‘비정형’의 형태로 되찾고자 했  매가 주렁주렁 맺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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