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전시가이드 2023년 06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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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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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flower-Red2 116.7×80.3cm Acrylic on Canvas 2023 Two blue flowers 162.2×112.1cm Acrylic on Canvas 2021
이종태의 꽃은 격렬하고 감각적인 운동 속에서 ‘생성’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꽃은 원본의 꽃과는 또 다른 꽃, ‘회화적 이미지’가 된다.
일화사상과 원융사상에 기대어 작가는 꽃 한송이를 그린다.
요 다면서 일의 관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원융사상의 요지다. 화엄사상인 현은 무척 어렵다. 그래도 가능하면 꽃을 자기 식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하려
이 원융은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고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 는 시도가 요구된다.
는 것이다. 이른바 이 원융회통사상은 한국 불교를 관통해 온 대표적인 사상
이다. 성당의 시인 왕유가 쓴 육조혜능선사비명에는 ‘세계일화 조종육엽(世 작가는 화면 중심부로 곧장 육박해 들어가는 꽃을 안겨준다. 꽃을 정면으로
界一花 祖宗六葉)’이란 구절이 있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요, 조사 여섯 분은 응시하게 한다. 비로소 관자들은 꽃을 다시 보게 되고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하
꽃잎으로 피어있다는 뜻이다. 세계일화라는 말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 게 된다. 사실 꽃에 대한 관습적 사고나 학습, 상식 등에 의한 경화된 의식이
는 글이다. 이를 널리 알린 만공스님에 의하면 세계는 한 송이 꽃이고 너와 내 꽃을 일정한 편견 속에서 보게 만든다. 따라서 꽃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
가 둘이 아니고 산천초목도 둘이 아니다. 이 세상 모두는 한 송이 꽃인데 어리 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꽃을 아름답다고만 보는 것은 지극히 왜곡되거나 편
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줄 모르고 있기에 너와 나를 구분하고, 내 향된 시선일 것이다. 꽃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해 다투고 빼앗고 죽이고 있다고 말 보인다. 식물성인 꽃은 인간에게는 영원한 타자다. 아니 주체인 한 인간의 몸
한다. 세상 만물이 개별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서로 존재의 원인이라는 인과 바깥에 자리한 것은 궁극적으로 타자이며 주체 역시 스스로에게도 영원한 타
론과 연기 사상 등과 같은 불교적 세계관이 함축 되어 있는 말이 바로 일화一 자에 해당한다. 이처럼 대상은 바라보는 이에게 언제나 타자다. 작가란 존재
花에 깃들어 있다고 본다. 는 대상/타자를 들여다보는 자이며 그림은 바라본 대상/타자를 드러내는 일
이다. ‘드러내기’란 이른바 리얼리티의 추구이자 대상의 정체를 밝히는 일을
일화사상과 원융사상에 기대어 작가는 꽃 한송이를 그린다. 그것은 꽃이자 말한다. 꽃을 그리는 일은 꽃을 질문하고, 다시 보고, 그 꽃에 덧씌워진 상식
생명체요 우주 자연이자 개별적인 인간의 존재를 망라한다. 모든 것을 한송 과 코드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 꽃으로 대변한다. 즉발적으로 떠오르는 상을 즉흥적으로 그려낸 그림은
색채로 문질러진 흔적과 격렬한 선의 자취 속에서 불현듯 꽃처럼 보이는 어 이종태의 꽃은 격렬하고 감각적인 운동 속에서 ‘생성’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느 자취를 밀어낸다. 작가는 꽃을 모티프로 삼아 그렸지만 그 대상 자체가 각 탄생한 꽃은 원본의 꽃과는 또 다른 꽃, ‘회화적 이미지’가 된다. 꽃의 재현이
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어떤 꽃이든 별 상관은 없 지만 그것의 기계적 복사, ‘유사’가 아니라 회화적 이미지로 환생한다. 그림이
다. 작가에 의해 출현한 꽃 이미지는 식물, 생명체를 빌어 그 존재에 대한 작 사진처럼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생명력 있게 떠내거나
가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깨달은 모종의 형태,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일화사 그 존재의 출렁임, 그것을 보는 이의 감동 같은 것을 화면 바깥으로 진폭 있게
상에 대한 나름의 이미지인 셈이다. 특정 꽃을 그린 게 아니라 식물/자연이란 울리고 있기에 나로서는 ‘기운생동’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더구나 일획
존재의 근원을 헤아려보고자 한 그림이자 한 송이 꽃에 담긴 사유를 전개하 에 가까운 선의 운용과 직관적인 드로잉은 동양화의 예리한 필선의 맛, 운필
는 그림이기도 하다. 꽃의 사실적인 재현이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려는 것이 의 운용을 닮았다. 꽃의 묘사가 아니라 꽃의 생명력이나 기운을 표출하고 있
아니라 자기 앞에 서식하는 한 생명체의 존재성을 그림으로 물어보고 있다 는 것이다. 다분히 동양화의 사의성이란 측면에서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해주
는 느낌도 든다. 자연을 보거나 식물이미지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이는 쇠털 고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서양화나 동양화의 구분 내지 구상이나 추상의 경
같이 많다. 그러나 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시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계도 무의미한 것임을, 그저 하나의 그림, 하나의 꽃임을 일러주는 그림이다.
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공통의 그림, 이른바 코드에서 빠져나오는 그림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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