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전시가이드 2023년 06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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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하늘바라기_2202 97x193.9cm acrylic on canvas 2022
2023. 6. 7 – 6. 17 장은선갤러리(T.02-730-3533, 운니동)
의인화한 나무를 에워싸는 아름다운 서정성 맞추기 어렵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딱히 가을의 상징색 가
운데 하나인 갈색을 일부러 맞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윤 경 초대전 있는 색깔은 사실적인 색채이미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계절
색을 완전히 무시하는 건 아니다. 작품에 따라서는 색채를 통해 계절을 유추
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특정의 계절을 의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글 : 신항섭(미술평론가) 그에게 색채이미지는 현실적인 감각을 반영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실재
하는 나무를 통해 받아들이는 감동의 표현이기에 현실적인 감각을 완전히 배
윤 경의 나무 그림은 유독 하늘을 우러르는 구도가 많다. 멀리서 바라보는 나 제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그의 작업에서 색채이미지는 실제를 통해서가 아
무는 줄기와 가지 그리고 무성한 잎으로 덮인 온전한 한 그루를 보여주고 있 닌, 의식과 감정의 흐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현실적인 색채이미
으나, 가까이서 올려다보는 나무는 온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잎이 하늘을 가 지가 남아 있더라도 실재하는 나무의 색깔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리는 모양새가 된다. 나무를 보려다가 하늘도 함께 보게 되는 셈이다. 나뭇가
지가 하늘을 가리는 가운데 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은 한층 더 높게 보인 그의 초기 작업은 나무를 소재로 하는 데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다
다.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채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에 들어오는 하늘은 확 시 말해 누구나 소재로 삼는 나무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법과 다
실히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그의 모든 그림은 나무로 채워진 른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묘사를 하지 않고
다. 나무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자리한 곳에서 결코 벗어나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 나무라는 물성에 착안하게 되었다. 따
지 못하면서도 인간에게는 많은 걸 가르쳐주는 무언의 존재 방식에 감동해서 라서 나무 조각이나 종이죽 또는 숯을 사용하여 작업했다. 이들 재료를 이용
일 터이다. 인간보다 월등히 큰 존재로서의 나무에 기댈 수 있다는 일 자체가 해 나무 형상을 만들고 채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나무를 실
인간에게는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가 나무를 그림의 소재로 삼게 된 건 여 제처럼 착각하도록 하는 일루전이 아니라 나무 그 자체의 직접적인 제시이다.
기에서 있는지 모른다. 어디에서건 어느 때건 말없이 곁을 내주는 그 존재 방 이렇게 보면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묘사방식인 사실주의나 인상주의가 지향
식은 철학자적인 면모까지 갖추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나무, 나무, 해온 실상의 재현 또는 실상의 재해석과는 완연히 다른 현대미학을 수용하게
나무뿐인 그의 그림은 이전까지 보아온 일반적인 나무 그림, 즉 재현적인 이 된 셈이다. 나무라는 형상이 있을 뿐 묘사가 존재하지 않으니 물질로서의 가
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나무 색깔이 일반적인 초록이 아니다. 나 치, 즉 물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남을 뿐이다. 또한 나무 조각이나 종이죽,
무도 계절에 따라 다른 색깔로 치장한다지만, 그의 나무는 계절색과도 별다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숯을 사용함으로써 물감이 지어내는 이미지와는 사
른 관계가 없어 보인다.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가을 색인 갈색처럼 계절색에 뭇 다른 조형 세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자잘한 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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