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전시가이드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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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덕 컬럼
         먼 기억 속
        김정 작가의 ‘아리랑’
        글 : 김재덕(미술컬럼니스트. 아트팜갤러리 관장)
                        아리랑합창.2025
        김정의 작품은 거의 일관되게 “아리랑”을 주제로 한다. 그는 아리랑을 단순한      럼 흔들린다. 흙냄새 나는 들판 위에서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어깨를 들썩
        민요가 아닌 민족 정체성과 한국인의 삶의 정서를 담은 상징으로 해석하고자        이며 흥겨운 가락을 부르는 듯하다. 고단한 삶의 무게가 잠시 내려앉고, 웃음
        한다.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지역별 아리랑의 정서를 색채와      과 신명이 바람처럼 번져간다. 그 웃음 속에 섞인 눈물조차 따뜻하게 느껴지
        구도로 표현함으로 음악적 리듬이 회화적으로 번역된 느낌으로 다가오게 해         는 것은, 아리랑이 가진 위로의 힘 때문일 것이다.
        준다. 김정의 아리랑은 사실적 묘사보다 화면을 단순화하고 추상화하는 과정
        에서 선과 면이 강조되고, 형태가 상징적으로 재구성되어 민속적·토속적 분위       ‘만왕만래아리랑’은 여러 빛깔의 선율이 얽히고설켜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이
        기로 아리랑의 담론을 이끌어 낸다. 토속성과 원초적 울림이 강조되는 채료는       룬다. 화면은 국경을 넘어선 듯 자유롭고, 언어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갈색, 붉은색, 푸른색 등 원색의 과감한 차용을 통해 강렬하면서도 색동빛을       다. 아리랑은 더 이상한 나라의 노래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
        닮은 색조들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는 한국 농촌의 흙냄새, 전통 의복의 색     는 화해와 소통의 언어가 된다. 그 앞에서 감상자 들은 작은 민요가 어떻게 인
        감, 민속적 무대의 화려함을 연상시킨다. 김정의 채료는 색의 대비가 크고, 때     류의 노래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로는 원색적·장식적 느낌을 주어 민족적 정열을 드러내 주는 등 감상자의 심
        성을 자극하여 준다. 김정의 아리랑에 표현되는 원무(圓舞)적 화면 구도는 화      김정의 아리랑은 민족적 향토성과 세계성을 드러낸다. 아리랑을 통해 한국인
        면 전체가 회전하거나 춤추는 듯한 리듬감으로 평면 조형에서 동적인 시각을        의 한(恨)과 신명을 동시에 드러낸다. 작품 속에는 그리움·이별·민초들의 삶의
        감상케 한다. 정적인 풍경보다 동적이고 음악적인 화면 구조의 특징으로 인물       애환이 배어 있으면서도, 이를 예술적·보편적 정서로 승화시키는 힘을 발휘한
        과 선들이 원형이나 물결 모양으로 얽혀 있어 마치 아리랑 가락에 맞춰 춤추       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단순히 모티브를 삼은 한국 민속화가 아니라, 현대 회
        는 장면처럼 감상 되어진다.                                 화 속 민족 정체성의 탐구로 가슴 속 깊이 남게된다.
        김정의 ‘정선아리랑’은 짙푸른 산맥이 겹겹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흐르는 선      김정 작가는 아리랑의 내용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도 바로
        율 같은 붓질이 마음을 흔든다. 산에 스며든 안개처럼 화면은 애잔한 기운으       인문학적 접근을 시행해왔다. 강원, 경상, 전라, 충청, 경기, 제주 등 아리랑 지
        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이별의 슬픔이면서도 다시 살아내야       역 현지를 체험하고 그곳 아리랑을 회화 연구로 평생 창작을 해왔다. 정선 아
        하는 힘의 노래다. 정선의 산천과 사람들의 한숨이 붓끝에 녹아들어, 그림 앞      리랑을 작업할 때에도 정선에 묶으면서 그 지역 환경 및 역사, 언어 및 생활
        에 서 있는 나조차도 그 선율 속에 발을 들이고 싶어 진다.               습관, 향토 음식 등을 경험하느라 정선의 명예 군민이 되기도 했다. 감성 체
        ‘진도아리랑’은 붉은 빛과 푸른 빛이 격렬하게 부딪히며, 화면 전체가 춤판처      험으로 인문학적 가치를 공부하며 지역 아리랑을 종합적으로 느끼는 작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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