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전시가이드 2024년 02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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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과 컨템포러리 아트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단청의 주의초와 커튼                                     주의초의  종류는  먹띠,  머리초주의,  탁의(卓衣)주의,  치전주의,  영락(瓔珞)

                                                        주의, 드림주의 등이 있다.
                                                        먹띠란 긋기단청이나 간단한 모로단청에서 기둥에 먹으로 그린 띠를 말한다.
        글 : 박일선 (단청산수화 작가, (사) 한국시각문화예술협회 부회장)
                                                        먹띠는 기둥의 화통가지가 벌어지는 것을 보강하기 위해 기둥의 윗부분을
                                                        감았던 쇠가락지를 쓰지 않은 경우 대신 먹으로 그린 것으로 못머리가 넓은
                                                        광두정으로 고정한 것을 본떠서 먹띠에 광두정 문양이나 매화점, 괏쇠문양
        주의초(柱衣草)는  기둥  윗부분에  하는  단청을  말한다.  궁궐의  단청에는   등을 그려 넣는다.
        주의초는  거의  하지  않고  석간주  가칠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호화롭고   머리초주의는 대들보나 도리, 창방 등에 머리초 주문양을 기둥에 하는 단청을
        화려해서 주로 사찰의 금단청을 하는 경우에 많이 쓰였다. 주의라는 단어를        말한다.
        직역하면  기둥의  옷이지만  그  의미는  기둥을  장식한  커튼이나  장식보를   탁의주의는  독특한  형식으로  금문을  넣은  비단  커튼을  감아  놓은  듯한
        뜻한다고 생각된다.                                      자락에 드림, 주렴, 술, 단 등을 늘어뜨리고 괴불도 매단 형태로서 주로 사찰의
        주의초의 유래를 기록으로 살펴보면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30년(1448년) 12     금단청에  쓰인다.  이러한  탁의주의에는  회장(回裝)에  주름을  잡은  경우는
        월 5일에 '불당(佛堂)이 이룩되니, 경찬회를 베풀고 5일 만에 파하였다. 불당의   치전주의라  하며,  자락을  휘장처럼  드리우고  주름도  잡고  드림,  술  등의
        제도가  사치와  화려함이  지극하여  금과  구슬이  눈을  부시게  하고,  단청이   장식을 드리운 문양을 넣은 경우는 영락주의라고 한다.
        햇볕에  빛나며,  붉은  비단으로  재봉(裁縫)하여  기둥에  입혀서  주의(柱衣)  영락이란  목이나  팔  등에  두르는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또는
        라고 이름하여 더럽혀짐을 방지하고, 향나무를 새겨 산(山)을 만들고 금부처       금관 따위에 매달아 반짝거리도록 한 얇은 쇠붙이 장식을 말한다. 불교에서
        세  구(軀)를  그  가운데  안치하였으니,  그  금부처는  안평  대군(安平大君)이   진주나 옥 등의 구슬을 꿰어 몸에 달아 장엄하는 장식을 말하는데 인도의
        일찍이  성녕  대군(誠寧大君)  집에서  감독해  만든  것이다.  근장(近仗)으로   귀인들은  남녀가  모두  영락을  두르며,  보살들도  영락으로  장식하고
        하여금 관대(冠帶)를 갖추고 대가(大駕)를 호위하는 의식과 같이 대내(大內)에     단장하였다.  후세에는  불상이나  불상을  모시는  궁전을  장엄할  때에  꽃
        메고 들어가게 하여, 친히 관람하신 뒤에 불당에 안치하였다.'라고 쓰여있다.      모양으로 만든 금속이나 주옥을 섞은 장식도 영락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선  초기  세종  재위  때까지만  해도  주의라  하여  기둥에  비단을   영락은  보통  손목과  발,  팔뚝,  목  등에  하였으며,  이러한  신체  장식의
        둘러 장식하였다. 하지만 비단은 비바람이나 먼지 등으로 쉽게 더러워지고         조형미술은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대개 그리스 또는 로마의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후 기둥을 두른 비단의 형상을 단청으로 그리면서        영향이 간다라미술에 미치게 되면서 더욱 화려한 양상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주의초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영락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특히 불교미술이 성행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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