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전시가이드 2024년 02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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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 시간, 134x170cm,  2023






            자연의 운(韻)이다. 그가 적잖은 작품의 명제를 <산운>(山韻)이라 함은 이러     것은 본래 산수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요구이자 덕목이다. 그가 운(韻)을 지향
            한 연유일 것이다.                                      하고, 물의 심미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산은 대상으
                                                            로 존재하며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며 교감하는 또 다른 상대로 인식
            그의 화면은 대체로 검고 어둡다. 수묵화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의 수묵은 맑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적잖은 실경 산수 작가들이 현장의 객관성에 함몰되어
            고 두터우며 깊이 있다. 반복적인 선염과 적묵을 통해 이루어지는 수묵의 두       산수 본연의 가치를 망실하거나 오도하고 있음을 상기 할 때 산수 자연에 대
            터움은 탁함을 기본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묵이 맑게 느껴지        한 작가의 관조적 시각을 통한 주관적 해석이 새삼 반갑고 귀하게 다가온다.
            는 것은 바로 물에 대한 그의 장악력과 이해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는 탁
            함을 통해 맑음을 드러내고, 어두움을 통해 밝음을 표현하는 모순되고 상충        그는 ‘산이 있어야 숲이 있고, 숲이 있어야 산이 그윽하다’라는 소회를 말하고
            되는 가치를 수묵을 통해 표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있다. 다분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이는 그의 작업을 관류하고 있는 가장 핵심
                                                            적인 가치이자 상징적인 발언이라 여겨진다. 이는 당연히 단순한 산수 자연
            사실 수묵은 매우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표현 수단이다. 그러므로 조형을 추        에 대한 설명을 넘어 그의 삶과 그가 지향하는 예술 세계 등을 포괄하는 상징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의(寫意), 즉 작가의 관념과 사고를 표출하는 것을 우      적인 의미로 읽혀진다. ‘산이 있어야 숲이 있다’라는 말은 그가 그간 대상으로
            선으로 한다. 그가 실경이라는 제약과 산수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특유        서의 산을 보고 숲을 관찰함이라 이해된다. 이제 그는 숲을 확인하고 스스로
            의 깊이와 두터움을 통해 자연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표출해 내는 변화를 통       설정한 ‘그윽한 산’으로의 여정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그간 그가 보여준 작가
            해 오늘에 이르고 있음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육안에 의해 관찰되는 형상       로서, 또 교육자로서의 성실함과 진지함을 전제로 볼 때 그는 늘 그랬듯이 은
            의 유혹을 초월하고, 그윽한 수묵의 세계를 통해 대자연의 본질에 육박하고        근하고 꾸준하게 그 성과를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우리들 앞에 펼쳐 보일 것
            자 함은 그의 작업이 어쩌면 이제 또 다른 변화의 과정에 다다른 것이라 여겨      이다. 작가의 다음 여정을 응원하며 그날을 기대해 본다.
            진다. 관찰에 의한 대상의 이해가 아닌 관조를 통한 대상의 내면에 접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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