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전시가이드 2021년 12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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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끼(파란하늘), 130.3×97cm, Oil on canvas, 2021
양종용 작가는 공중에 떠있는 전통 대상들을 이끼와 결합해 그려낸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기운생동(氣韻生動)하게 그려내어
코로나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긍정과 치유의 메시지를 선사한다.
작가의 특징은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 轉置)’을 영리하게 종류의 이끼가 산다. 작은 동물에게는 안식처와 음식이 되는, 생태계를 유지
구성하면서도 ‘직(織) 사실의 표현성’을 성실하게 아로새긴 작품 표현에 있다. 하는 중요한 구성요소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작가는 본래 있던 그릇의 자리와 하찮게 밟히는 이끼라는 모티브를 ‘내려놓는
행위’가 아닌 ‘올려보는 행위’를 통해 우리 삶의 낮음과 높음을 평등하게 만드 작가는 이끼의 생(生)을 “수많은 관계, 이른바 내안의 나 혹은 환경과의 만남
는 철학을 담는다. 뜻하지 않게 만난 듯한 묘한 아름다움을 ‘낯익게 구현’하는 등”으로 확장시킨다. 세상을 헤쳐 살아낸 나(혹은 우리)라는 삶의 주체가 이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삶을 향한 진지한 성찰이 발견된다. 그 어떤 하찮은 대 끼처럼 조화롭게 자연에 스며들 듯 살아내라는 따스함을 표현한 것이다. 무
상일지라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따뜻한 마음(Human nature, humanity), 바 엇인가를 담는 그릇과의 만남 속에서도 이끼는 한없이 내어주는 그릇의 마음
로 이러한 치유가 양종용 작가가 구현해하는 작품 하는 자세인 것이다. 에 고마움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청명한 하늘’
은 그릇과 이끼가 살아갈 가능성의 세상인 것이다. 초기 이끼작업에서 시작
이끼의 실존, 삶의 이끼와 만나는 방법 된 관계미학의 정초는 ‘그릇이끼’ 시리즈를 통해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끼는 원래 ‘물기가 많은 곳에 나는 푸른 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바위나 나 작품의 크기가 확대될수록, 대상의 디테일 등은 더욱 섬세해지고 너른 하늘
무, 작은 식물 등에 달라붙어 사는 모든 식물로 까지 의미가 확대된 이유는 ‘ 에 둥실 떠있는 그릇이끼들은 넓은 세상을 향해 도약할 작가의 성찰로 이어진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이끼의 본성’ 이른바 누구와도 잘 어우러진 관계성 다. 조화와 어울림 속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끼의 삶처럼, 서
에 있었다. 이끼는 물속에 살던 조류가 진화해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육상 식 로가 보듬고 안아주는 긍정하는 마음이 작품 곳곳에 베어있다고 할 수 있다.
물이다. 그러다보니 살아가는데 반드시 물기가 필요하고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작가는 말한다. “삶의 이끼와 만나는 방법, 그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역지사지
주로 자라게 되었다. 집 주변의 돌담이나 축축한 마당, 물기가 많은 숲 속 등에 (易地思之)의 마음속에서, 억지하지 않는 자연스런 관계 속에서 저절로 이루
서 살아내는 생존력이 그것이다. 이끼를 의인화 시킨다면, 우리가 행복한 삶 어지는 것은 아닐까.”
을 영위하기 위해 가져야할 ‘긍정적인 태도’와 맞닿을 것이다. 세상엔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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