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전시가이드 2021년 07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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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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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로 엮인다. 그것들은 서로 긴밀하게 작용하는 섬유질의 줄기나 타래로 연결       서 마음의 미세한 진동을 기록하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가느다란 선을 그리
            되며 종횡으로 불어나 더 크고 깊은 용적의 공간으로 증폭된다. 그렇게 스스로      는 볼펜을 쥐고 무엇인가를 그려가는 것은 마음의 주파수를 그려내는 것이다.
            자라고 불어나 하나하나의 화면들을 채우는 각각 색다르고 특이한 이미지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화가 김종열은 그러한 기법으로 자아내는 선들을 자연스
            은 정적인 형태로 멈추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들을 이루고 있다.      럽게 연속적으로 조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조형 의지를 갖춘 짜임새 있는 어
            어떤 것은 빽빽한 밀도의 세포들로 빈틈없이 짜인 정의할 수 없는 질감의 살을      떤 형태로 이끌어나간다. 여기에는 물론 펜을 쥔 화가의 감각기관으로서의 손
            이루며 사방으로 세력을 뻗어 움직이는 몸집으로 자라나고, 어떤 것은 모종의       이 결정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자율의지를 가진
            전체를 거의 완성하기 직전에 문득 세찬 비바람이나 태풍을 맞고 와해하려는        자유로운 선의 조형 질서가 자신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여 갖추어가는 자
            몸통을 몸서리치며 극적으로 추스르는 듯한 형용을 보인다.                 율적 세포증식과 같다. 화가의 손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자연 발생적인 조
                                                            형 의지로서의 마음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학적 지형도이자 마음 밭의 풍경이다. 마음 밭의 풍경은
            애초부터 계획된 형태를 갖추지 않고 끊임없이 화가의 손끝에서 그때그때 조        그것은 거미가 자신의 신체에서 끈끈이 줄을 뽑아내어 공간을 포획하듯이 화
            금씩 진화해 왔다. 아마도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여러 심리적인 계기들이 마        가의 ‘펜질’ 행위 자체가 영토를 확장하며 피부를 만들고 섬유질의 신경과 근
            음속에서 끊임없이 아우성치다가 그의 손이 잡은 볼펜 끝의 출구를 통해 지        육으로 이루어진 조직의 피륙을 짜는 일과 같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아무것
            면으로 술술 실타래처럼 풀려나왔을 무수한 선들은 화면 위에서 유기적 생김        도 없는 허공에 자신의 전 존재를 펼쳐서 자신의 영토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
            의 몸체로 하나씩 구체화 되어왔다. 그가 2017년에 발표한 전시에서 보여준 ‘    는 허공에 몸을 받아 나온 정신이 거주하는 영혼의 집을 짓기 위해 존재의 피
            약동하는 유기체’를 이루는 자유분방한 ‘펜질’의 선이 짜내던 얽히고설킨 섬       륙을 짜는 작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일은 사람이 살아내야 하고, 살
            유질의 유기적 구조물들은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도 한층 더 깊고 두꺼운 공간       면서 거쳐 가야 하고, 겪어야 할 땅이기에 마땅히 그것을 개척해야 하는 지상
            의 안팎을 넘나들며 더욱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차원의 구조로 불어나 있다.       의 과업이다. 자신이 발 디딘 땅을 거쳐서 사는 동안 어떤 미지의 만남과 마주
            .                                               치고 그것을 마음 밖으로 꺼내어 뚜렷하게 겪으며 살아야만 하는 숙명적 과제
            인간의 정신, 또는 내면을 마음 밭으로 은유하는 일은 여러 의미를 띤다. 이는     와 같은 그 무엇이다. 그렇게 밟고 거쳐 가야 할 길이 되어주는 섬유질의 결이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공간적으로 시각화시켜 심리적인 움         나 광물질의 독특한 복합적 구조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풍경의 의미는 결국
            직임이나 정신의 활동을 비유하는 것으로서 불가에서는 교화의 방편으로 사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전인미답의 땅이나, 해저의 경이로운 산호초지대 또는
            람의 번뇌와 망상 등을 마음의 작용으로 보고 그 마음을 다스리고 수양하라는       우주 창조의 순간과 같은 대폭발이 이뤄내는 무시무시한 카오스와도 같은 순
            가르침으로서 마음 밭을 잘 일구어야 한다는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그것은        간적 풍경으로서 사람의 마음 바닥을 반석같이 받쳐주는 디딤돌과도 같다. 또
            마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밭이라는 공간으로 시각화하여 매우 효과적         는 존재의 몸집을 단단히 둘러싸는 쐐기풀 갑옷과 같다. 그것을 천국이나 지
            으로 눈에 보이는 가상의 이미지로 만든다. 김종열의 그림 또한 그런 점에서       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비추는 마음속에서의 일이다. 그것은 인간의
            심리적으로 알 길 없는 마음의 풍경을 공간적으로 치환하여 풀어낸다. 이성과       마음이 거주하는 깊고 깊은 곳의 심리학적 영역이며, 그림으로 풀려나와 형태
            논리의 통제를 벗어나고자 하는 수단의 하나로 초현실주의에서 나온 자동기         를 갖추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잠재적 영토이다.
            술법은 이러한 마음의 순수한 파장을 지진계의 바늘처럼 그려낸다는 의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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