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전시가이드 2021년 08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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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Dance, 60.6X72.7cm, Mixed media on canvas
는 것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는 은 연락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그녀)들을 보고 싶고
표현으로 논증한 바 있다. 헬라어로 쓰인 이 용어를 세네카(Seneca)가 라틴 만나고 싶다.” 사회 속에서 성장해 가면서 인연을 맺었던 많은 사람에 대한 ‘
어로 번역하면서 ‘사회적 동물’로 바꾸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원래 지속적인 자각’은 인간의 존재 의식을 타자를 통해서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의
적 의미는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이었다. 주지하듯이, 폴리스(polis)란 그리스 발로이다. 지금의 결여와 부재가 외로움과 소외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부추기
시대 도시국가를 지칭하는데, ‘폴리스적 동물’을 오늘날 의미로 풀이하면 ‘도 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신흥우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집단 초상을 그린다.
시인’과 같은 셈이다. 신흥우의 그림에서 거주지와 일터를 고층으로 쌓아 올린 현대인은, 글로벌 시티를 통해서 국가와 도시의 경계를 넘으며 유목하고 탈주
빽빽한 아파트와 빌딩 숲은 오늘날 새로운 버전의 폴리스다. 그의 그림에서도 한다고 할지라도 엄밀하게 말해 한 국가와 도시의 구성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보듯이 이곳에서의 인간의 만남은 익명성 안에서 벌어진다. 서로를 특별히 신 현대인은 타자를 통해서 자신을 확인한다는 ‘사회적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지
경 쓰지 않고 관성처럼 스쳐 지나가듯이 말이다. 한편, 오늘날 사회적 인간 개 못한다. 현대 도시인의 ‘집단 초상’은 오늘날 나의 삶을 공유하는 또 다른 존재
념의 실천은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 안으로 들어가 익명성을 더욱 강화하기 들이다.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 인연을 맺을지 모를 예측 불가능 속 가능한 ‘만
도 한다. 그것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사회적 인간’과 ‘익명성의 인간’은 남의 대상들’이기도 하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집단 초상의 원형’과 같은 것이다.
코로나 19의 느닷없는 침범이 야기한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사람과의 만남
IV. 만남이 절실한 사람들 자체가 두려운 사건이 되어 가는 오늘날, 작가 신흥우는 건조한 인간관계를 맺
누구에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자리한 사람, 여행 고 살아가는 현대인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위안을 던지는 그
지에서 우연히 스치듯 만났던 사람, 한때는 사랑했지만 이별한 사람, 돌아가 만의 ‘집단 초상’을 그린다. 그들 속에 내 친밀한 이웃이 있고 또 있을 거라는 ’
신 부모님 그 외에도 부지기수이다. ‘보지 못해 보고 싶은 사람’은 대개 연락이 무한한 긍정의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두절되어 어떻게 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 다시 연락해서는 안 될 사람,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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