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전시가이드 2021년 11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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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나의 識 8 60x60cm 장지에 분채 2020
화千變萬化, 때로는 묵직하게 제 위치를 지키고 있는 우주의 본질을 그렸다. 임없이 변화함’, 그 자체가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보고 인식해왔던
실제로 2016년에 제작된 연작들의 제목 가운데 하나로 선택된 ‘태허太虛’는 『 것이 ‘실재實在’가 아닌 셈이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러한
장자莊子』의 「지북유편知北遊篇」에 등장하는 말로 천지 만물의 근원을 의미 우주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번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하는 용어다. 즉 작가의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세계에서 시작했으되 어 다. 이는 집착을 버림으로써 고통을 잊을 수 있다고 했던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느새 동아시아 고유의 철학적 가치를 시각화하는 방향으로 키가 잡혀가고 있 가르침과도 통하는 것이라 흥미롭다.
었던 것이다. 이 시기 작가의 작품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철학적 사유 혹은 대상 2018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나의 식識’ 연작은 바로 이러한 작가의 인식이 토
을 진한 채색과 명확한 형태로 그려낸 것이었다. 대가 되었다. 화면 속에는 해체되고 흩어진 사과의 형상이 보인다. 작가의 관
2017년 후반기를 기점으로 작가의 지향점은 다소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구체 점대로 화면 속 사과는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대상
적인 대상을 통해 우주의 본질, 생성生成과 소멸消滅, 실재實在와 인식認識과 으로 그려졌다. 구불구불한 사과의 형태 그 주변의 색띠, 분절적인 채색 등은
같은 보다 구체적인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주요한 그러한 시각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작가가 주제와 제재에 적합한 표현
대상으로 다룬 것이 사과다. 사과는 탐스러운 동그란 형태와 윤이 나는 빨간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오랜 숙고와 숙련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빛깔, 그 위에 달린 갈색의 꼭지와 푸른색의 잎을 특징으로 한다. 새콤달콤한 ‘나의 식’이라는 제목은 작품이 이러한 작가 스스로의 관점과 인식에서 비롯
특유의 풍미에 잘 어울리는 겉모양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과를 눈으로 보고 된 것임을 부연해주고 있다.
이를 사과의 본질로 인지한다. 그렇지만 이는 일정 부분 혹은 상당 부분 우리 이처럼 이혜양의 작업은 작가 개인을 포함한 우주의 이야기이다. 또 철학적
들의 착오, 착각, 착시이다. 사유에 기반한 삶의 진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무겁고 진지
우리 인식 속의 사과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형상에 가깝지만, 사실 사과의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이를 특유의 구성력과 밀도 있는 채색을 통해 매력적인
모습은 시시각각 변한다. 푸른색이었다가 붉은색으로 익어가고 시간이 흐르 화면으로 치환하고 있다. 이러한 면은 특히 <나의 식識 10>과 같은 2020년의
면 어두운 갈색으로 변하며 심지어 검은색으로 썩어가기도 한다. 또한 빛에 따 근작에서 두드러진다. 한결 풀어진 형상들과 옅어진 채색, 눈처럼 화폭 전체
라서,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서 전혀 달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어떠한 것이 사 에 흩뿌려진 색점들 덕분이다. 이와 같은 산뜻해진 화면은 번민을 덜어낸 작
과 본연의 모습이고, 본질일까? 결국 고정불변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으며 ‘끊 가의 내면의 반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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