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전시가이드 2021년 11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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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Risian2, 20p, Oil on canvas, 2021







                               2021. 11. 26 – 12. 9 갤러리내일 (T.02-391-5458, 새문안로)





         빗장으로 가린 꽃들의 기지개                                람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그림이 그들이 대개
                                                        보아오던 ‘예쁜’ 꽃과는 ‘다른’ 것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그녀가
        이경원 초대전                                         오랫동안 간직해온 사물을 향한 ‘순수한’ 시선이 숨어있다. 그녀가 꽃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문득문득 보아왔지만 잊은 듯
                                                        했던 그 꽃들을 마주하며 꽃의 얼굴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본 순간은 사랑하는
        글 : 서길헌(조형예술학박사)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인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말한다. 슬픔. 상실감. 애
                                                        도의 마음. 어찌할 수 없는 이 모든 심정을 반사경처럼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
                                                        돌려주는 꽃의 표정을 그녀는 문득 본 것 같았다. 그 이후로 그녀는 이전처럼
        꽃을 꽃이라고 부르는 순간 꽃은 기호에 갇힌다. 수천의 꽃들이 꽃이라는 일       쉽사리 꽃을 그릴 수 없었다. 그녀는 꽃을 세상에서 처음 본 듯이 낯설고 어눌
        반명사에 속절없이 갇혀있다. 장미나 백합 등, 꽃의 종에 따른 고유의 이름으      하게, 그동안 익히고 구사했던 능숙한 기법을 모두 잊어버리고 최초로 붓을
        로 지칭할 때에도 여전히 꽃은 지시어의 빗장 뒤에 숨어있다. 비단 꽃만이 아      잡은 듯이, 그 꽃의 얼굴을 서투르게 되짚어나갔다. 그 길은 멀고 출구를 찾기
        니다. 모든 사물이 보는 법을 잃은 시선 앞에서 제 몸을 드러내지 못하고 상투     어려운 미로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꽃을 그리는 행위에서
        적인 이미지로 전락한다. 그러기에 이경원의 꽃 그림을 별생각 없이 보는 사       새삼 이전에 느끼지 못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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