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전시가이드 2025년 01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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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컬럼


         작가 곽선경(Sun K. Kwak)

        공간에 남겨진 에너지의 흔적들



        글 : 이주연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Drawing as invisible lines_opening performance_2023 (Photo by JinRo)




















                    Untying Space_CUAG_2018 (Photo by Justin Wonnacott)




        미국에 거주하는 곽선경 작가는 작년 제주도립미       인 사람들의 보편적 여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획일    가 시각화되어 구현되는 공간에 잠시 머무르면서
        술관에서 개최된 ‘2023 국제 특별전 프로젝트 제    화된 정체성을 설정하지 않고 고정적인 가치에 얽     공동의 예술 경험을 공유한다.
        주’  <이주하는  인간_호모  미그라티오>  전시에서   매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미그라
        실시간 드로잉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위기      티오와 노마드 작가들의 진취적인 작업 정신을 통     전시가 개최된 제주도립미술관의 안과 밖을 이어
        의 시대 인류 생존의 대안을 ‘역사적·문화적·생태     해 유동성과 가변성이 하나의 도전이자 창의적 사     주는 내부 중앙 공원을 바라보는 사면의 유리 공간
        적·우발적 이주’로 보고 그 해법으로서 인간의 이     고의 출발점이고 도화선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위에 펼쳐진 <공간 풀기_간극 안 그리기>(Untying
        주  본성인  ‘호모  미그라티오’(homo  migratio)를   거기에 곽선경 작가가 있다.         Space_Drawing in the Gap)(2023)는 작가의 <공
        제목으로 채택한 이번 전시는 샤(Sonia Shah)의                                 간 드로잉>(Space Drawing) 프로젝트의 일부이
        『인류,  이주,  생존』(2021)(원제:  『The  next  great   이 전시에서 곽선경 작가의 개막식 퍼포먼스인 <  다. 이는 작가가 ‘안과 밖 사이의 공간’에 반응하며
        migration: The beauty and terror of life on the   보이지 않는 선들로서의 드로잉>(Drawing as In-  상호 간의 화합을 꾀한 드로잉으로, 중정의 유리 벽
        move』, 2020)에 근거한다. 토토라(Giovanni Tor-  visible Lines)(2023)은 무용수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뉴욕으로의 이주 이후 노마
        tora)(1971)와 바데(Klaus Bade)(1994)를 거쳐 초  인간의 몸짓과 그 결과물의 의미를 탐구한 구겐하  드적 삶의 포지션을 상징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
        국적 시대 이주하는 인간으로서의 ‘호모 미그라티      임 뮤지엄에서의 드로잉 퍼포먼스(2010)가 연상되   다. 빛이 완벽하게 컨트롤되는 화이트 큐브에서의
        오’, 즉 ‘호모 미그란스’(homo migrans)는 아탈리  기도 한다. 작가의 모든 마스킹 테이프 ‘공간 드로  설치 작업과 달리, 유리를 통해 보이는 미술관의
        (Jacques Attali)(2003)의 유목하는 인간을 뜻하는   잉’ 작업들은 관람객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따로 마  중앙 정원까지 포함시킨 화면을 배경으로 자유롭
        ‘호모 노마드’(homo nomad)와 더불어 정체성, 공  련하지 않더라도 제스처와 프로세스 위에 형성되    게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선으로 전환된 에너지
        동체, 공존/공생, 종교, 전쟁/평화, 테러/안전, 사회  는 행위에 기반한 설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  의 흐름과 속도가 시시각각 빛으로 움직이며 그려
        계급 등 다양한 동시대 이슈의 혼재 속에서 문화적     한 퍼포먼스를 통해 벽에 남겨진 선들은 작업 과정    지는 바닥 위에 투영된 드로잉 이미지와 함께 강하
        으로 혼종, 혼합, 혼성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통    에서 발산된 에너지의 시각적 결과물이자 공간에      게 느껴진다. 그 덕분에 관람객들은 배경과 흐르는
        칭한다. 생존을 위한 미그라티오와 노마드 인간의      남겨진 흔적들이다. 작가가 별도로 마련한 퍼포먼     선 사이에서 작품 속에 들어와 저마다 새로운 시공
        치열한 삶은 단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새로운 삶    스를 관람할 기회를 가진 관람객들은 작가의 신체     의 확장을 경험한다. 여기에서는 구성을 위해 분산
        을 찾아 용감하게 길을 떠나는 지금 이 시대 일반적    적 참여로 행해지는 실제적인 행위 속에서 에너지     되고 지류화된 곡선이 아닌, 보다 강력하게 응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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