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전시가이드 2025년 01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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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창초의 귀면은 사악한 무리가 법당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궁창초 만큼은 매우 독창적이다. 이곳 정면에 달린 분
            려 넣었다. 이처럼 궁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귀면(鬼面)은 키르티무카(kirt-   합문은 궁창이 2단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어칸의 분합문 궁창의 상단에는
            timukha)와 비슷한 점이 많아 키르티무카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하는데, 일     토끼 두 마리가 떡방아를 찢는 모습과 이를 옆에서 바라보는 거북이를 해학
            부에서는 귀면이 아니고 용의 얼굴, 즉 용면(龍面)이라는 다른 주장도 있다.      적인 표현으로 그렸다. 하단에는 만개한 연꽃 세 송이와 풍성한 연잎, 두 개의
            키르티무카는 인도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시바(Shiva) 신의 무서운 모습을 표    꽃봉오리를 그려 넣었다.
            현한 형상이라고 하는데 키르티(kirtti)는 영광, 무카(mukha)는 얼굴을 뜻하  좌우측칸의 분합문 궁창의 상단에는 두 마리의 오리를, 하단에는 물고기와 연
            는 범어의 합성어로 ‘영광의 얼굴’을 의미한다. 키르티무카가 불교에 수용되며      잎 두 장을 그려 넣었다. 일반 회화에서 보면 표현이 조금은 어설프게 보이기
            사찰의 수호신으로서 항상 눈을 부릅뜨고 사악한 무리를 물리치게 되어 사찰        도 하겠지만 민화적 입장에서 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며, 순수하고 천
            을 수호하는 벽사(辟邪)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진난만한 표현으로 더 친근감이 가게 한다.

            하지만 우리 단청의 귀면은 괴기스럽다거나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해학적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전까지만 해도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달나라의 옥토
            으로 표현하여 익살스럽고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 모습을 보면 대체로 둥굴넓       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떡방아를 찧고 있다고 상상하였다. 토끼 하면 또 별
            적한 들창코를 하고서, 두터운 눈썹에, 눈은 부리부리하여 오히려 놀란 듯한       주부전(鼈主簿傳)이란 옛날이야기가 생각난다. 남해(南海)의 용왕(龍王)이 중
            표정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 난 뭉뚝한 뿔은 산타의 썰매를 끄는 루돌프 사슴      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되자 영약(靈藥)인 토끼의 간(肝)을 구하기 위해 자라
            의 뿔같이 귀여워 보이고, 입은 벌린 상태로 하얀 이빨에 잇몸까지 환하게 내      가 육지로 가서 토끼를 꾀어 등에 업고 용궁으로 돌아오던 중 이 내막을 알게
            보이며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는가 하면 연꽃을 입에 물기도 하며, 혀를 빼물      된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여 간을 볕에 말리려고 꺼내 놓고 왔노라는 말에 자
            고 있기도 하여 그 익살스러움은 웃음까지 자아내게 한다.                 라가 속아 토끼를 놓쳐 버리게 된다. 자신의 실수로 토끼를 놓치고 나서 자라
                                                            가 목숨을 끊으려고 할 때 도인(道人)의 도움으로 선약(仙藥)을 얻을 수 있게
            이와 달리 독특한 궁창초를 찾아보자면 경기도 의정부시 사패산 중턱에 자리        되어 용왕의 병을 고치게 되었다는 줄거리이다. 토끼가 자라의 꾐에 빠져 용
            잡은 석굴암(石窟庵) 극락전의 궁창에 토끼와 거북, 오리와 물고기, 연꽃을 그     궁으로 갔으나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인데 불교와
            려 넣은 궁창초가 이색적이다. 석굴암 하면 경주 석굴암이 가장 잘 알려져 있      는 무슨 관련이 있어서 궁창에 그렸을지 궁금하다. 토끼가 간 용궁을 극락으
            다. 그에 비해 이곳의 석굴암은 규모에서나 문화재적 가치, 예술적 측면에서       로 생각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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