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전시가이드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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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빌리 차일디쉬와 트레이시 에민 (우) 1982년 카세트 음악을 1988년에 재수록한 앨범 자켓
업하는 음악들은 놀랍게도 이러한 그의 관심사를 놀랍도록 정직하게 표현하 가로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할 때 그는 주류에게는 반항적이었지만 성실
며, 그의 그림 작업은 굉장히 신비스럽고 미묘하다. 그는 작품의 주제를 종종 하고 끊임없는 집착으로 그만의 독특한 화법을 계속해서 고수해 왔다. 두 살
자신의 주변 환경에서 가져오거나 자작나무 숲, 영국의 목가적인 풍경 등과 한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17세 때 음악을 시작한 빌리 차일디쉬는 페인팅 작업은
때 아내였던 트레이시 에민의 누운 누드화, 또는 같이 알고 지내거나 존경하는 물론 시집 40여 권과 소설 5권과 100여 장의 음반을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문
사람들의 고독한 자화상 등을 즐겨 그렸다. 1999년에는 동료 화가 찰스 톰슨 화적인 지위를 얻게 된 반면에, 난독증을 가진 그는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냈
과 함께 개념미술에 저항하는 <스터키즘>이라는 국제예술운동을 창안했다. ‘ 다. 그러다가 2010년 ≪바젤 아트페어≫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화가로서 전성
스터키즘’은 항상 그림만 그리는 그에게 옛 애인이었던 트레이시 에민이 회화 기를 누리고 있다. 독일의 ≪노이게림 슈나이더≫, 뉴욕의 ≪리만 머핀≫ 등
에만 집착(stuck)한다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 차일디쉬와 톰슨은 많은 포고 유명 갤러리에서의 대규모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를 발표했는데 그 중에 주목할 포고인 <리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
판하는 것이었다. ‘리모더니즘’의 목표는 양식, 주제, 매체에 상관없이 정신적 화가, 포토그래퍼, 시인, 소설가, 영화제작자, 배우, 가수 및 기타리스트 등의
인 가치가 함유된 예술을 만드는 모더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것 다양한 아티스트 활동을 하고있는 영국의 펑크 문화와 컬트 문화의 아이콘,
이었다. 트레이시 에민과 헤어진 이후, 빌리 차일디쉬는 2000년부터 광대 복 아티스트 빌리 차일디쉬의 국내 첫 개인전『늑대, 일몰, 그리고 자신』전시회가
장을 하는 등【터너 상】에 반대하여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서 시위를 하 안국동 ≪리만 머핀 갤러리 서울 점≫에서 진행 중이다. 스위스 갤러리스트
고 있다. 그들은 찰스 사치가 후원하는 <yBa> 작가들을 줄곧 비난해왔다. 한 라쉘 리만과 뉴욕 ≪메트로픽처스 갤러리≫ 디렉터 데이빗 머핀이 세계적 유
편으로는 트레이시 에민이 결정적으로 빌리 차일디시와 갈라선 이유는, 바로 명 갤러리 ≪리만 머핀≫이라는 갤러리 브랜드를 뉴욕, 홍콩에 이어 서울에서
태생적으로 반골 기질로 다져진 그의 성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애증으 론칭하면서 대표 작가로 영입한 빌리 차일디쉬의 국내 첫 공식 개인전인 셈이
로 얼룩진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 서로 간의 예술 세계에 깊은 상호 작용을 일 다. 6회 개인전이었던 2011년 뉴욕 전시『On Shuffle(교대로)』에 이어 열린 일
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빌리 차일디시에 관한 기사를 보면 트레이 곱 번째 개인전이다. ‘코로나 팬더믹’이 전 세계 미술생태계에 기승을 부리면
시 에민의 미술은 분명히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의 미술이 워낙 표 서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와중에 개최된 전시회니만큼, 초대된 작가의 글로벌
현주의적이고 자전적이기 때문이다. 빌리 차일디시 역시 훨씬 세월이 흐른 후 경쟁력과 인지도를 반증해준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산업, 경제, 사회가
에 트레이시 에민과의 관계를 이용했다. 구체적으로, 2000년 11월 런던 ≪퓨 마비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미술생태계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치
어 갤러리≫에서 개최되었던『빌리 차일디시와 트레이시 에민: 채텀에서 살고 앞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잘 지내고 죽어가는』이라는 별스런 제목의 전시회에서, 빌리 차일디시의 작품 지구 환경은 크게 개선되고 있으며 야생동물들 역시 보금자리로 돌아오고 있
과 나란히 트레이시 에민은 자신의 나체 혹은 반라의 모습을 1980년대 초에 다고 한다. 그야말로 '코로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빌리 차일디쉬의
찍은 유진 도이언의 사진들과 함께 전시한 바 있다. 자아 성찰적이며, 자서전 작품 세계를 마주하다 보면, 적막한 풍경에서 소리 없이 꿈틀대는 에너지가 느
적 성격의 감성적인 페인팅과 글, 음악으로 잘 알려져 있는 빌리 빌리 차일디 껴지고, 자작나무숲 속 늑대는 털과 근육이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다. 마치, 자
쉬는 표현적인 측면에서 뭉크, 고흐 그리고 독일 작가 슈비터스 등의 영향을 연의 재해로 인한 상처를 자연을 통해 치유 받는 느낌이다. 아무쪼록 우리 미
받았다. 그 이유는 이 작가들의 창의력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동시대 미술사조 술인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역경 속에서도 ‘새로운 정신’으로 거듭나 암담한 현
에서 벗어나 작업했던 것을 본인과 동일시 하며,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실의 무게를 스스로 견디고 헤쳐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그들의 역할에 흥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빌리 차일디쉬가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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