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2019년10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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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인상, 60.7×60.7cm, Acrylic Colors On Canvas, 2019 도동항인상, 80×100cm, Acrylic Colors On Canvas, 2019
고요와 노닐다
와 전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삶의 본원지가 아닐까 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김성석은 간간히 동양화법을 겸하곤 했다. 그의 ‘압축된 풍 황구하 (시인)
경’이 삼차원이 아닌 이차원의 공간구성을 유지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선(謙齋 1676~1759)의 진경산수화는 실경이 모델이지만 원형 그 자체는 상주예술촌 뒤뜰 매화나무 가지에
아니다. 장승업(1843~1897)은 다양한 화제를 능란하게 다루는 기량에 비해 직박구리 한 마리 웅크린 채 비에 젖고 있다
문자향(文字香)이나 서권기(書卷氣)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희(秋
史,1786~1856 )의 세한도(歲寒圖)는 장승업의 작품과는 다른 품격의 그림으 교실 끄트머리 방에 세 든 화가의 붓놀림도
로 평가된다. 이들 화법의 공통점은 형사(形似)보다 사의(寫意)를 중요하게 여 저 홀로 번지고 흐르고 스며들면서
긴 동양미술의 특징을 상기시킨다. 김성석의 ‘압축된 풍경’도 일면은 동양화법 봉인된 고요의 매듭을 꾸불꾸불 풀고 있다
을 차용하였으나 작업 전반을 그 틀에 견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형사(形
似)와 사의(寫意)의 관계뿐만 아니라 문자향 서권기마저 의식하지 않고 주어 하얀 화포에 붓질 한번 쓰윽 하면 가슴이 뛰어
진 삶을 소요할 때 가장 자기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신념이 ‘압축된 풍경’ 새의 눈빛, 새의 날갯짓으로 펼쳐지는 원형의 지도,
으로 드러난 것이라 여겨진다. 산과 강과 길과 집들은 아무런 경계가 없다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는가 하면 눈을 감아도 보이는 세상이 있다. 땅은 하늘을 섬기고 하늘은 땅을 우러러
김성석의 ‘압축된 풍경’이 그렇다. 그의 그림은 영감의 원천인 자연(실경)에 심 이 세상 모두 그림 아닌 게 없다
상을 덧댄 것이다. 하여 심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 “줄 끊어진 연이 산
능선 너머로 날아가고 수풀 사이로 누렁이에게 놀란 꿩이 날아오르는 모습(작 거꾸로 솟구쳐 모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 소리와
업일기)”도 볼 수 있다. 대지의 생명과 공존하는 인간의 삶도 볼 수 있는 것이 저녁 무렵 노을빛으로 일렁이는 바람 냄새와
다. 시각적이지는 않지만 모두 느껴지는 것들이다. 이런 김성석의 ‘압축된 풍 어둠 속에서 별이 돋는 나무의 부채춤사위
경’ 일면은 심상경(心想景)인 셈이다. 심상은 종종 예술의 표현재료이자 기초 섬과 바다와 보름달은 모두 고요의 전생이다
가 된다. 예술을 갖추어주는 요소는 창의성과 가치관도 한몫을 한다. 치밀한
분석능력도 간과할 수는 없다. 어떤 경험이든 예술로 치환할 때 그것은 예술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은
범주에 들게 된다. 작업의 동기와 과정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이다. 깊고도 짙푸른 고요의 은신처
때론 침묵이 답이다. 침묵처럼 고요한 풍경은 표면과 이면, 씨실과 날실로 짜 운동장 비켜 앉은 오래된 석고상 구멍 난 머리에
인 작가의 삶 다름 아니다. 그의 풍경은 곧 그의 삶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바 고요가 슬어놓은 알을 품는 어미 새처럼
로 김성석의 풍경을 압축풀기를 해서 읽어야할 이유이다. 예술은 삶이고 삶은 돌고 돌아 흐르는 고향 수회동ㅈ, 일생의 꿈 한 채 그리며
과정이다. 지금까지는 자연경관이 압축된 풍경의 주 모티브였다면 이어질 다 그는 고요를 기르는 사람
음 행보는 인간이 핵심 대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대지 위에 다양한 무늬를 새 고요를 키우다 마침내 고요가 되어 노니는 사람
기며 사는 인간이 펼칠 삶의 진면목이 기대된다. 화업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
고 평가는 관람자들의 몫이다. 어느새 가을비 그치고
벽에 걸린 화폭의 고요가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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