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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권 컬럼
모란병풍 8폭중 4폭, 129×27cm, 지본채색,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1980년대 학자들의 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1984년, 유홍준은 《문예중앙》 여름호에 〈민화의 민
중성과 비민중성〉에 대해 설명하였으며 1988년 원동석은, 《월간 미술세계》 〈
민화 연구 활동 우리 민화의 미학과 현대적 조명〉 을 실어 주목받았다. 계속해서 1989년 임
두빈의 《월간 미술세계》 〈한국 민화의 미학적 관계〉 와 1989년 김철순의 《민
화》下권(예경산업사) 〈한국민화의 주제와 정신〉 그리고 1989년 이태호의 《
월간미술》 〈조선후기 민화의 재검토〉가 민화에 대한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구었다. 이밖에도 1980년, 조자룡의 《한국민화의 멋》(예경산업사)과 1988년
에 발간한 《한국민화서론》(예경산업사), 그리고 1989년에 발간한 《민화》(예
경산업사) 를 통해 민화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지면서 대중에게 큰 사랑을
1980년대는 민화를 문인화, 궁중 미술과 같은 권위적인 제도권 미술과 반대 받는 계기가 되었다.
되는 ‘민중미술’로 본 동시에 전통적 의의를 지닌 역사적, 민속적 유산으로 평 이상과 같이 1980년대는 타 분야 못지 않는 보다 본격적인 민화 연구가 전
가하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 조자용, 김호연, 김철순 등이 70년대에 이어 개되었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미술사학계에서 민화의 한국적 특징과 토속적
계속해서 발전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었으며, 안휘준, 허영환, 유홍준, 강우방, 미감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미술사학계에서는
이태호 등이 심도 있는 발전적인 연구 성과를 보여 주었다. 이로써 민화의 실 창의성과 변화상을 중시하는 근대적 창작주의와 역사주의에 입각하여, 민화
체가 어느 정도 파악된 동시에 궁중회화의 핵심적인 그림들이 드러났으며, 이 가 미술사 사료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저급한
로 인해 그동안 지나치게 확대된 민화의 범주를 보다 명료하게 규정짓는 논문 그림으로 낮게 취급하였다. 이른바 당시의 미술사학계는 민화가 인습적이고
들도 등장하였다. 구체적으로 1980년대 학자들의 대표적인 주요 연구를 년 상투적으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에, 시대적 변화와 창의성을 반영하는 대표적
도에 따라 간략하게 열거해 놓으면 다음과 같다. 인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한국 회화사에서 다룰 수 없다는 입장
1982년, 일본 강담사(동경)에서 발행한 《이조의 민화-조자용, 이우환(외)(편 이었다. 한편 1980년대 후반에는, 그동안 일본화의 잔재로 치부되었던 ‘채색
집고문)》(상,하2책) 가 민화 연구 활동에 일조하였다. 1983년, 안휘준이 ‘호암 화’가 새롭게 부상되면서 전통 채색화의 연구와 함께 민화가 새로운 관점으
미술관’에서 개최한 《민화걸작전》 카다로그에 〈한국민화산고〉 를 실어 대중 로 조명받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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