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2019년6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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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올리브 나무와 열매들을 지나가며
En passant oliviers verts et fruites huile sur toile &~
반(基盤) 한 절대자인 커다란 나무아래를 작가와 함께 산책하도록 인도한다.
“‘저 장미 꽃 위에 이슬’은 교회 찬송가 제목이다. 원제는 <IN THE GARDEN;
정원에서 >이지만 한글 찬송가 제목에서 모티브를 차용했다. 화가는 바라보
는 대상이 자연이나 세계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 텍스트가 오브제가 될 수 있
자작나무 아래서-붉은 화살호를 기다리는 여행자 huile sur toile 72.7×91 cm 2018
다는 것을 염두 해 두었다. 여기서 장미는 꽃의 의미나 이미지 보다 나무의 형
태와 상징을 강조했다. 또한 찬송가의 가사에 나오는 사물들을 나열하고 Col-
lage 기법으로 그려내는 형식을 취했다.” -한광숙, 작업노트중
어 흙으로 빚는 행위로 탄생 시킨 점에서 작가는 이를 회화작업과 설치작업에 연작으로 이어지는 ‘시린 청춘-플라타너스’ ‘단풍나무의 사랑’ ‘달빛의 향나무
도입하여 백토(白土)를 하나하나 손으로 빗어 열매의 형태로 성형(成形)하고 들’ 작품은 회화에 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감상 방법을 제안
초벌소성을 거쳐 올리브색, 짙은적색, 보라색, 짙은갈색등 다양한 표정의 채 한다. 여기에 나타나는 플라터너스, 단풍나무, 향나무들은 다양한 오브제들
료(彩料)로 채색을 하는 과정의 수고로움을 수용했다. 초벌 채색위에 시유(施 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달빛이 아래에서 존재하고, 젊음과 사랑을 말하여 준
釉)를 하고 2차 소성과정 속에 우연성 혹은 필연성을 가미한 또 하나의 의도 다. 이 각각의 나무들은 작가가 의도하는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 회화
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와 색을 품은 소품들이 태어난다. 그 열매들을 흙으로 가 가지는 새로운 기운을 생동하게 하여 감상자들로 하여금 시선을 머무르
빚어서 굽고, 시유 하는 반복된 행위는 고난(苦難)한 순례자의 모습처럼 손과 게 하고 그 생동함을 작가의 의도하는 나무그늘 아래서 함께 사유 할 수 있
마음의 노력을 통해서 알알이 결실을 맺게 되고 캔버스의 중심에선 나무와 함 도록 하여 준다.
께 예술의 열매를 맺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풍성한 열매를 나타내기 위한 작
가의 의도에 따라 천개의 열매를 계획하고 결과물들을 설치하였다. 수많은 열 서양화가 한광숙이 가지는 창작의 세계는 심연의 종교적 신념과 새로운 변화
매의 형상과 함께 길고 흰 천이 설치된 갤러리 한 면은 관람자를 작가가 의도 에 두려워하지 않고 현대적 시대의 흐름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실행하는 탈장
한 화면 속으로 이끌고 작가와 다른 또 하나의 동질적 인격으로 호흡하게 된 르의 감각과 함께 작가와 감상자가 함께 향유 할 수 있는 분신적 가면놀이의
다. 흔히 영화에 비유하여, 영화감독은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특정 배우와 오 역할에 진심으로 다가서는 충실함이 있다. 우리화단의 특성상 현실에 안주하
랜 기간 작업을 하며 호흡을 맞춘다.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장 고 타협한다면 창작의 산고를 겪지 않고 손쉬운 길로 유행을 좆는 그림그리는
폴 벨몽도(Jean-Paul Belmondo)와, 마틴 스코시스(Martin Scorsese)는 로 공급자의 역할로 편안함을 추구 할 수도 있다. 종교적 신념이든, 감상자와의
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와 함께, 레오스 카락스(Leos Carax)는 드니 라 교감이든 풀리지 않은 일생의 과제를 풀기 위한 서양화가 한광숙의 창작의 열
방(Denis Lavant)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어 작업했다. 감독은 자신이 직접 은 쉬지 않고 작업 중 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그 용기의 대단함이 전해져 온다.
출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분신을 통해 배우에게 일종의 역할극을 하게 만든 오래전 가족과의 소중한 인연을 뒤로하고 최근 조우하게 된 서양화가 한광숙
다. 따라서 작가 이면의 페르소나는 감독의 자화상이자 영화의 자화상이 된 의 연구형 작가 모습이 내심 고맙게 생각된다. 그녀를 따르는 후학들도 한류
다. 당시 ‘푸른 올리브 나무와 그 열매들을 지나며’ 설치작품은 서양화가 한광 미술의 전성기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용기와 수고를 함께 하는
숙의 이면의 가면을 가진 외적 인격으로 한 화면 속에 작품의 오브제와 함께 연구형 작가로 성장되길 응원하며 그에 앞장서게 될 한광숙 작가의 더 나은
배우가 되어있었다. 서양화가 한광숙은 이 작품 활동을 통해 현대예술에 있어 미래가 열려 더욱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유분(油芬) 충만한 올리브나
서 최근의 화두로 대두되는 회화 범주의 절대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장 무를 만나게 되길 기도드린다.
르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표현 이라는 것임을 어필하고 ‘푸른 올리브 나무와 그
열매들을 지나며’를 통해 탈 장르를 개척하고자 하였다. 또 이러한 고정관념에 " .... 원하건 원치 않건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활동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한 예술가로써 전시장 인간은 생업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지식과 예술 작품을 나누면서 연결되어
을 찾은 관람자들에게 지나간 기억 속 풍경을 경험케 하고 함께 호흡하며, 회 있으며...." -톨스토이
상의 시간들을 사유(思惟)하며, 그가 중심에 세운 내면의 종교적 신념으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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