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2019년6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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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피안(彼岸) 162.2×130.3cm Oil on Canvas 2014 정화된 밤 162.2×130.3cm Oil on Canvas 2014
2019. 7. 2 – 7. 7 용인포은아트갤러리(T.031-896-6003, 010-4745-2884)
데포르마시옹-표현주의, 그 시각과 색채 파)로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태고의 원시미술과
이집트 미술도 사실 훌륭한 데포르마시옹이었다
박정우 展 고 본다. 그러나 그들의 것은 고의로 의도되지 않
았다는 점에서 구별될 수 있고, 따라서 여기서의
데포르마시옹이란 근현대로부터 본격적으로 시
작함을 의미한다. 20c 초, 그들은 작가 자신의 주
글 : 박정우 작가노트
관적, 또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해석을 통해 대상
의 변형, 심지어 왜곡까지 하면서 정형과 재현으
태고부터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토로부터, 미켈란젤로, 벨라스케스, 밀레와 쿠르베 로 부터의 탈주를 시작했다. 이것은 바로 서양미
만들거나 하면서 생존해 왔다. 고대유적의 석상 에 이르기까지, 이들 훌륭한 거장들도 사실상 이런 술사에 또 하나의 공시적 가로지르기로서, 새로운
이나 동굴벽화는 오늘날 보기에도 아름답고 훌륭 흐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렵지 이정표이자 획기적인 역사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
한 조형물임에 틀림없다. 서양 조형예술의 역사는 않게 의식할 수 있다. 예컨대 앵그르나 쿠르베의 이기도하다. 이후 인류의 조형예술의 흐름은 급격
BC. 7천 년 전부터 지금의 현시대까지 장구한 세 누드작품도 그 선대의 작품에서, 또 조소의 귀재 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여 하루가 지나면 또 하나의
월을 거쳐 연연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토록 긴 로댕의 불세출 작품들 속에서도 B.C 100년의 '라 새로운 미술사조가 생겨날 정도로 그 흐름은 변화
세월의 역사도 그 양식의 차이점으로 나누어 본 오콘과 그의 아들들'에서 볼 수 있는 솜씨와 숨결 무쌍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다면, 물론 사가에 따라 구분기준이 다를 수는 있 이 함께 흐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 가 시각/영상예술까지 한데 아울러, 수많은 예술사조
겠으나, 결국 두 세 개의 큰 분기점으로 구분해 볼 운데 19c 인상주의출현은 그동안의 미술사를 크 와 양식들을 데포르마시옹이라는 공통된 개념으
수 있겠다. 게 가로지르는 첫 번째 분기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로 바라본다면, 결국 그들 모두를 탈 정형, 탈 재현
그 첫 번째 분기점이란 바로 19c 중엽의 인상주 인상파 화가들은 더 이상 사물의 재현에 매달리지 의 큰 속(屬) - 바로 표현주의라는 두 번째 분기점
의Impressionism의 출현이다. 즉, 인상파출현 않았고, 대신 빛과 느낌, 인상에 따라 대상과 자연 안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각에도
그 이전이냐 그 이후이냐의 분기점인 것이다. 인 을 대하고 묘사해 내었다. 재현과 정형-소위 말하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수많은 미술양식과 무소속
상파출현 이전의 조형예술이란 서양철학의 용어 는 동일성의 신화를 거부하고 주류의 미학개념과 의 예술 사조들도 사실상 데포르마시옹을 전위에
를 빌린다면 곧 미메시스(Mimesis)적인 것이다. 도 결별하며 조형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놓고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위해 달리고 있는 무한
B.C. 25,000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발견이래부 또한 인상주의는 반세기도 채 안 되어 연이어 등장 대의 대 탈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터 19c 인상파 출현이전까지, 그 기간 예술가들에 하게 될 또 하나의 획기적 분기점의 태동을 암시하 이 시점에서 굳이 결론을 짓자면, 나는 위에 기술
게는 하나의 공통적인 흐름이 있음을 인지 할 수 고 유도해 주고 있었다. 한 서양미술의 두 분기점을 높은 새의 눈으로 조감
있다. 그것은 미메시스, 즉 실제의 사물을 모방하 그 두 번째 분기점이란 다름 아닌 데포르마시옹 해 보며, 그 속에서 오늘의 작가 - 나 자신의 예술
거나, 아니면 더 아름답게 또는 장중하게 그려내 D'eformation-표현주의의 등장이다. 원래 표현주 의 정체성과 진정성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무
고 빚어내는 동일성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조 의라는 붙임은 독일의 E. 루드비히 키르히너(다리 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찾아보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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