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2019년6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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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古城)  116.8×91cm  Oil on Canvas  2014   이카루스의 추락  150×150cm  Acrylic on Canvas  2019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작품 ‘새벽 II, 파수꾼’에서, 새벽하늘은 보라와 녹
                                            색의 구름을 타고 지극히 몽환적으로 흐르고 있다.
            1997년 나는 미술공부를 하고자 무작정 미국 뉴욕    외로운 독수리 한마리가 가로등위에 앉아 여명의
            으로 떠났다. 그곳 'Art Student League of New   도시를 지키고 있다.
            York' 이라는 미술 학교에서 본격적인 미술을 배    -때로는 음악과 자연의 소리도 온몸의 전율을 일
            우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는 내 인생을 바꾸어 줄     으키며 전혀 새로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훌륭한 미술 학교였다. 일찍     에 보이지 않은 상상의 자연과 색채로 지각되어
            이 마크 로스코나 잭슨 폴록 등 수많은 근현대 미     나타나곤 한다.
            국의 거장들이 바로 이 학교에서 그림공부를 했듯      -작품 ‘정화된 밤’은 독일 표현주의 화가이자 작곡
            이... 나 역시 2000년도 초까지 약 4년에 걸쳐 이   가인 아놀드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 ‘정화된 밤’의
            학교에서 인체해부학드로잉, 유화/수채화를 비롯       표제를 그대로 사용했다. 날카로운 현의 소리는 푸
            하여 판화와 조소까지, 본격적인 그림공부를 하게      른 달빛이 되고 현란한 음의 절정은 무지개색의 산
            되었다. 애초부터 굵은 획과 강한 색채를 선호하      야가 되어 걷고 있는 두 사람을 에워싼다.
            는 나로서는 자연히 사물의 재현과는 거리를 두       -작품 ‘이카루스의 추락’은 그리스 신화로서 많은
            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선대의 거장들이 보여준 완     거장들이 같은 주제를 그려왔고, 지난 세기 앙리
            벽한 데포르마시옹이나 온전한 정신세계로의 몰        마티스와 피카소도 같은 모티브를 패러디하곤 하
            입, 또는 사회적 앙가주망을 보여주는 그런 수준      였다. 나 역시 인간의 추락은 마찬가지지만, 신화
            은 물론 아니다. 그곳까지에는 역량이 턱없이 부      속 이카루스처럼 인간의 자만이나 실수로 인한 추
            족하고, 자신의 고뇌와 내공이 저만치 부족하다는      락이 아니라 도시의 빌딩숲에 쌓인 고독한 현대인
            것을 스스로 안다. 하지만 섬뜩섬뜩 스치는 표현      의 추락을 의미하며, 결국 그들의 종착역이 되는,
            주의 -그들의 시각과 색채는 나의 눈과 뇌파를 흔     어쩌면 그래서 더 빨리 도착하고 싶은 바람일 수       새벽 II, 파수꾼  108.5×162.2cm  Oil on Canvas  2012
            든다. 그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찰나이기도 하지      도 있다는 은유를 두었다. 애초에 황금 날개는 없
            만, 한편 계속되는 몽환이기도하다. 때로 눈앞의      었으며 그 날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공중에서
            자연과 사물은 그 형태가 일그러지며 왜곡되어 다      높이 날고 있는, 영혼을 거두는 새만이 갖고 있다.
            가옴을 느낀다.
                                            그림을 시작한지 어언 20년, 그동안 모아놓은 작     나에게 황금빛 날개는 고사하고 거푸 깃털이라도
            -작품 ‘피안(彼岸)’ 속에서의 하늘과 물은 갑자기    품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자     하나 달아주어 이카루스처럼 추락하지 않을 수 있
            새가 되고 물고기가 되어 그렇게 다가왔다. 그리      신의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곤 하지     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고 나의 시선은 저 멀리 수평선너머의 피안의 세      만 이제 과감히 지인을 비롯한 세인들에게 나의작
            계로 사라진다.                        품을 선보이려고 한다.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좀 더   ‘미술철학사’의 저자이신 이광래 교수님께 존경심
            -작품 ‘고성(古城)’은 번개 맞은 고목에서 수 천 년  열심히 할 것을, 좀 더 일찍이 죽자 사자고 덤볐을    과, 한국미술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민수님께 감사
            의 영혼들이 폭발하듯 화염이 되어 밤하늘로 날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뒷덜미를 잡지만 이것은 시작      함을 전하고 싶다.
            다닌다. 그들은 살아있는 나 자신이 되고 나는 바     에 불과하다는 마음을 먹으며 가까스로 위안해 본
            로 그들이 된다.                       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보아주며,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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