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전시가이드 2025년 08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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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초대석

















































        무위심상(無爲心狀)  53x41cm  캔버스에 먹물  2024





        런 발견인 셈이다. 분갈이 이후 쓸모없는 토분이나 동네 어귀에 버려진 토        밑바탕에 비닐을 깔고 문지른 다음, 떼어내면 마치 달표면이나 분화구 같
        분을 구해서 그것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사용하는 과정도 작가에겐 소소          은 면이 생긴다. 여기에 물감이나 크레파스로 칠하고 전동 샌더기(electric
        한 일상의 재발견인 것이다. 돌가루 묻힌 뒤 아크릴을 바른 다음에 먹물을        sander)로 고르지 못한 부분을 갈아낸다. 다시 유화물감을 발라서 긁어내
        입히는 과정을 보며 우연적 요소의 개입을 보게 된다. 작가는 여기에 자연        면, 이때 자연스러운 능선이 나타나고 여기에 하늘색을 칠해 주면 구름이
        스레 선호하는 먹물을 투하하면서 조금 성긴 올의 천에 짙게 베어든 뒷면         머무는 산이 되고 산의 계곡에 물이 흐르게 되며, 때로는 산기슭에 눈 내린
        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뒷면에 여과된 듯 베어든 모습이 그야말로 자연스        겨울철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나타난다.
        럽게 산수화폭을 이룬다.
                                                        작가에게 왜 무위심상(無爲心狀)인가? 무위란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
        작가는 “흐름이 있어요. 그림이 흘러가는 방향이 있어요. 일부러 늙는 게        나 인위적 행위가 배제된 것이다. 대체로 ‘억지로 꾸미거나 인위적으로 작
        아니고 늙어 가는 것처럼 그림도 순리를 따라요. … 내 삶의 흐름이에요.”       용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무위자연’을 자주 언급하는 작가 전제창
        라고 진솔하게 말한다. 존재론의 예술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에겐 무위심상, 즉 무위의 마음상태이다. 이를테면 그에게 무위자연은 무위
        1889-1976)가 말하듯, 이러한 흐름은 시간의 본성에 따라 되어감, 즉 생성   심상과 동의어이다. 자연 그대로의 마음상태인 것이다. 마음의 상태란 마음
        이다. 초봄에 씨를 뿌리고 한여름의 성숙을 거쳐 늦가을에 수확하듯이, 시        의 심경(心境)이나 심사(心思), 심정(心情)으로서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이
        간이 익어감에 의한 시간의 성숙, 곧 시숙(時熟)의 결과 자연스레 도래한 것      나 감정’이다. 한편 상태란 ‘사물이나 현상이 놓여 있는 모양이나 형편’을 일
        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은 시간의 축을 따라 진행되면서 마침내 무(無)에       컫는다. 물리적으로는 자연 현상의 관찰에 의하여 기술된 상황 그대로이다.
        이르는 것이며, 무화(無化)는 시간의 소멸인 것이다. 작업의 과정을 들여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이치로서 열역학적인 진행이나 에
        다보면, 작가는 먼저 토분이나 돌가루를 반죽해서 패널이나 천에 바른다.         너지 이동의 결과 빚어진 상태일 것이다. 전제창에게 무위심상의 산수(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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