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전시가이드 2025년 08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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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50x30cm. 화선지에 먹물
구적 작품들이 세련미를 표방하며 시각적 감성을 자극하며 바뀌어 있다. 각 준다. 묵의 필선을 작가의 일생을 다져온 공고한 운필의 힘을 원천으로 구속
서실마다 묵향을 내 품었던 수 많은 학생들의 내음은 지금은 한적한 여백으 됨 없는 자유로운 필선으로 유희한다. 그저 서예라는 운필의 틀에 매이지 않
로 오랜시간 머무르고 있는 장년 이상의 심신수양 묵향으로 바뀌었다. 각 대 고 금단의 선을 과감히 넘어서는 도전적 시도로 묵의 파격을 베이스로 한다.
학에 선설되었던 서예학부는 매년 폐과되어 이제는 존재 학부를 찾아보기 힘 추상회화의 자유로운 터치감으로 출발하여 한글이 가지는 포근함으로 서화
들며 전문서예가는 그 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 서예가들이 설 수 있는 입지는 의 조형미를 탐닉한다. 문자가 가지는 자음과 모음이 각각의 속도로 걷고 뛰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곧, 이 은은한 묵향이 디지털 프린트의 소음 뒤로 사라 고 날고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듯한 문자 형상의 집합이 문자의 기능을 넘어
져 버릴 것 같은 위기감 속에 놓여있는 현실이다. 미술계와 우리사회의 정책 서는 격렬한 춤동작으로 감상케한다.
적인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서예가 임제철은 단지 글씨를 쓰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먹의 번짐 안에서
파주의 한 서실에 한국 서예계의 원로 반열에 올랐음에도 자신만의 서법과 수 사유하고, 채색의 여운 속에서 인간을 성찰한다. 그의 작품은 바로 그 철학적
묵의 현대화를 감상 할 수 있는 천착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임제철서예가가 있 여정의 흔적이다. 한 획 한 획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이며, 생
다. 임제철서예가는 우리의 한글을 수묵을 통해 현대적 감성으로 재 창조하 의 경계 너머를 응시하는 시선이다. 그의 작업은 한글의 조형미를 바탕으로 한
는 현대서법을 한글서화로 담론화한다. 임제철의 한글서화는 한민족의 감성 깊은 탐구이며, 서예의 고전적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회화적으로 확장해
과 그리움, 소망, 그리고 애절하면서 포근한 사랑이 듬뿍 담겨진 우리의 한글 가는 여정이다. 그의 작품은 단어를 넘어서 시가 되고, 문장이 넘실대는 형상
을 모티브로 하는 한글형상화 작업이다. 이 되어 화면 위에 생명을 얻는다. 전통 서예의 엄숙함은 그에게는 자유로움
이고 그 뿌리에 대한 경외는 여전히 살아 있다. 검은 먹선 하나에도 고요한 울
작가는 우리 한글 조형미를 모티브로 먹의 필선을 차용한다. 한글은 그 자체 림이 있고, 색의 농담 사이로 언어를 초월한 감정이 배어든다.
로 짜임새와 형태가 예술적 기질과 크게 맞닿아 있고, 한글은 그 자체로 독창
적이며 아름다운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임제철의 필선을 통한 묵이 더해지는 무엇보다도 임제철의 작업에는 ‘인간애(人間愛)’가 있다. 그가 써 내려가는 한
한글 조형미는 서체 특성상 문자를 인식할 수 있는 일차원 방향의 시점에서만 글자, 한 획마다 인간의 고통과 기쁨, 존재에 대한 질문이 묻어난다. 서예는 단
볼 수 있는 한계성을 넘어서고자 한다. 한정된 시각으로 예정한 평면적 환조 지 기술이 아니라, 인성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인문적 해설을 요구한다. 특히
(좁은 뜻의 Vollplastik)를 형(形)과 역동성(舞)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단 주목할 점은, 그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사후세계'와 '영혼'을 사유한다는 점
순한 문자의 기능 한계를 역동적인 심미감으로 더하여 형을 이루는 독창적 세 이다. 그에게 서예는 생의 찰나를 기록하는 동시에, 삶 너머의 세계를 응시하
계의 창작물로 감상자의 시선을 이끌어 준다. 는 통로다. 작가에게 있어서 한글의 한 글자 안에도 영혼의 흔적이 남는다. 그
렇기에 그의 작품은 감상자를 정적인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그동안 한글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조형적 심미 획의 생명력으로 삶의 본질을 묻고, 그 물음에 조용히 귀 기울이게 만든다. 그
감을 감상 할 수 있는 창작 과정을 통해 한글이 가지고 있는 조형성에 대한 무 래서 그의 작품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경건함을 품는다. 흔히 볼 수 있는 단어
궁무진한 가능성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에 더하여 임제철은 우리 한글을 모티 일지라도, 임제철의 붓끝에서 태어난 순간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브로 한 작품활동 과정에서 ‘한민족의 감성과 그리움, 소망, 그리고 애절하면 의 대화를 시작한다.
서 포근한 사랑’이라는 감성의 인문적 철학을 이야기한다. 경쾌한 선적인 요
소가 강조된 구조적 조형감의 작품이미지에서 감상자들은 문자의 단순성이 서예가 임제철은 파주시예총회장, 파주시미술협회장, 경기평화미술대전운영
아닌 조형적 제3의 감성적 모습의 심미감을 마주하게 해 준다. 묵의 필선이 강 위원장, 한국미술협회부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국제미술교류협회인
조된 선적인 요소가 기하학적 조형작품 속에 한글의 환영적인 묵색에 더해진 AP21부회장으로 서예를 통한 해외활동과 후학의 양성에 왕성한 활동을 이어
적, 청의 순색은 사군자의 파안(破眼) 형태와 함께 현대 미니멀적 감성의 공통 가고 있다. 먹과 색, 한글과 사유가 어우러진 그의 작업은 오늘날의 서예를 새
분모를 발견하게 한다. 롭게 정의하며,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예술로 자리매김한다. 한글이라는 고유
의 예술 언어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잇는 작가 임제철. 그가 펼쳐나갈 예술의
사랑과 평화-1(70x70cm. 화선지에 먹)은 한글 문자의 언어 속의 기능적 내용 결은 앞으로도 깊고 단단하게 이어질 것이다.
이 반영된 다양한 조형미의 구축이 서화를 통한 작가의 감성적 메시지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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