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전시가이드 2025년 08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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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경흥사 명부전 수미단의 기린도(사진작가 안창헌 제공)





                                                            하였다. 대체로 도교적인 그림이 많은 편인데 기린을 오행의 정령(精靈)으로
                                                            여겨 인간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영매(靈媒)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그런 이
                                                            유로 신선들이 타고 사후 세계를 인도하는 동물의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책
                                                            거리 그림의 소재로도 쓰여 서책이나 고동기(古銅器)들과 함께 그려졌다. 공
                                                            자의 어머니가 태몽에 기린이 나타나서 위대한 성인이 세상에 올 것을 계시
                                                            하였다고 해서 유교에서는 기린을 덕과 인을 갖춘 성인을 의미하여 공자에
                                                            비유하였다.

                                                            서양에서 사령의 기린과 비슷한 상상의 동물로 유니콘(Unicorn)이 있는데 머
                                                            리에 뿔이 하나인 짐승이어서 일각수(一角獸)라고도 한다. 유니콘의 모든 힘
                                                            은 뿔에서 나온다고 하며, 뿔에 해독능력이 있어 중세 유럽에서는 유니콘이 뿔
                                                            을 물에 담그면 바다나 호수가 깨끗해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또한 가톨릭에서
                                                            는 유니콘이 정결과 청순을 상징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상징적으로 보
                                                            여준다고 여겼으며, 하나의 뿔은 하느님의 독생자로서의 예수를 의미하고 유
                                                            니콘의 죽음은 예수의 성스러운 죽음과 연관시킨다. 처녀에게 순종하는 유니
                                                            콘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예수를 상징하여 유니콘은 대체로 여인과 함
                                                            께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유니콘을 소재로 한 작품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
                                                            지만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의 <유니
                                                            콘과 여인>을 비롯해서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96), 살바도
                                                            르 달리(Salvador Dali, 1904~ 89)등의 작품이 있다.

                                                            단청에서 기린도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을 찾자면 광화문이다. 광화문은
                                                            삼문(三門)의 형식을 취하여 정면 중앙의 홍예 천장에 봉황, 좌측에 거북, 우측
                                                            에 기린이 그려져 있다. 각각 두 마리씩 음양의 조화와 상생을 의미하듯 서로
                                                            마주 보는 대칭 구도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조선 시대의 회화에서
                                                            쌍룡이나 쌍봉황, 쌍어, 쌍학 등과 같은 의미에서 짝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린
                                            광화문 홍예천장의 기린도   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을 표현한 화염문은 사악함을 물리치고 복을 부
                                                            르는 믿음과 영적인 기(氣)를 시각적으로 그린 것이다. 게다가 기린을 감싸고
                                                            있는 오색 구름은 단청에서 쓰이는 오방색으로 채색하여 하늘과 연결된 존재
            모습을 도드라지게 부조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배경에는 불꽃, 구름, 혹은 생      로서의 기린을 강조하며 기린의 움직임에 활력을 주는 듯하다.
            명력을 상징하는 덩굴이 얽히고설킨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속을 달리는       궁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에 기린을 그림으로써 길상의 기운을 마주
            기린은 시간과 공간이 압축된 상황을 의미하는 듯하다.                   하도록 하는 것은 마치 기린이 하늘과 궁궐, 인간을 이어주는 중재자이자 수
            또한 선묘적 표현으로 조각된 윤곽선에서 유려함이 느껴지며, 단청과 조각이        호자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서로 유기적인 영향을 주며 융합된 멋진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단청의 채색은       광화문에 그려진 기린의 회화적 특징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특유의 신체 구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일부는 벗겨지고 마모되었으나 오히려 회화적 깊이를         조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오방색을 기본으로 강렬하고도 화려한 채색
            보여주며, 원색보다 퇴색된 색이 시각적 밀도와 신비감을 높여준 느낌이다.        을 하여 단청 특유의 색감을 구현하였다. 길상과 왕권, 생명의 역동성 등을 상
                                                            징적으로 함축하고 있으며, 궁궐 건축의 미적 완성을 충족시키는 수준 높은
            민화에서는 유불선(儒佛仙)의 종교적 성격을 띠며 때로는 무속과 같은 민간        회화이다. 단순히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회화의 전통과
            신앙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도 있으나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표현         독창성을 드러내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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