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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의 증식, 100×70×225(h)cm, stainless steel, 2019(부분컷)    With hopem 73×73cm, 한지위에 화이트펜, 2008




                                                            그의 작업 스타일은 레디메이드도 아닌 것이, 미니멀니즘이나 추상주의, 구
            난 그의 발언에 동의 하지는 않지만 그가 보여주는 작업은 점과 점의 연결성       상주의의 융합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전혀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것이다. 이
            을 넘어 하나의 빛이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만들어지는 작품들을 보고 있       런 장르를 처음 접하는 관객은 작품의 성질이 난해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으면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의 그 막연한 신비스러움과 경이로움을 느        의 작품 시리즈를 천천히 관람하게 되면 마치 작가가 광활하고 막연한 우주
            낀다.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을 꿰뚫어 그것의 본 모습을 재해석하는 그의 작       의 공간에서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는 무한한 창조 에너지를 통해 드로잉 하
            업 방식은 무엇인가를 기교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다른 작가들에서 찾아 보        듯, 빛으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창조하는 포퍼먼스를 전시장에서 볼 수 있을
            기 힘든 작업방식이다.                                    것이다. 이러한 창조의 행위에 대한 이유는 없다. 단지 창조하는 행위 그 자체
                                                            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소비의 사회(Consumption communi-
            ties)에서 이 시대에 막연히 자기 회사의 상품들과 서비스를 광고하며 그 위     이는 자신이 창조한 조각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사랑에 빠진 나르시즘적
            엄성을 내보이며 목적을 가진 이미지들 속에서 조용익 작가의 (Stain-less-   인 창조를 말하는 피그말리온과 대조적이다. 그의 활동을 해석하자면 앞으로
            Particle)스텐레스의 구 입자는 이 세상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로, 형상이 아닌   100년을 내다보고 22세기를 준비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주요 사상인‘토
            빛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일렛리즘(Toiletlism)’을 대표하는 것 같다.

            현대 과학이론 중 끈이론(String theory)이 이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쉽고 이   우리가 무엇을 먹든, 배설이 된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서 다시 인간에게
            간단한 이론이다. 하지만 우주를 이루는 끈 입자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양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앞으로 다가오는 4차 산업의 자동화 기술과 인공지능,
            컴퓨터가 나온다고 해도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조용익은 이러한 끈이론의        그리고 생명과학의 시대의 핵심적인 코어(Core)는 어떻게 인간과 자연을 이
            형상들에 기초를 둔 조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해 아래, 나노      롭게 할 것인지에 대한 순환적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혁
            입자로서 구성되어 모든 생명체들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 시대        신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해 학술적이고 도덕적인 연구가 절실히 필
            와 어떻게 함께 상생하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한다.              요한 시점이다.

            또한 그가 만들어낸 낙타와 사자, 그리고 아기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  이러한 중요한 시대적 시점에서 작가는 앞으로 살아갈 이 세상의 본질적인 것
            etzsche)가 말한 영원 회귀설(Ewige Wieder-Kunft)을 언뜻 떠오르게 하나   들을 탐구함으로 우리에게 작품과 하나가 되어 생명의 본질인 파괴를 통한 ‘
            그보다 더 본연의 생명에 대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는 눈에 보     새로움’이라는 정의를 다시 내리는 하나의 미션을 주는 것과 동시에 우리 스
            이지 않는 실존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게 한다.                    스로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창조성에 집중을 시키게 하는 그만의 작업 의
                                                            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대학교와 대학원 시절 고대 신화와 근대 조각상에 대한 우상화 작업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패러디하며 각기 다른 형상들에 대한 인류가 추구하는 목         조용익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대상들과 거리를 두고 마치 그 대상과 이 세상
            적은 무엇이고 그 목적들이 생긴 요인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인류학적으로 어        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 이 시대에 진정한 친
            떻게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이번 그의 전시는 그의 실존적 형       구가 누구일까? 이 시대에 진정한 작가가 누구일까?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술작
            상에 대한 연구의 연장선이며 낭만주의적 자기 파괴를 통한 새로운 세상을 열       품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로 그는 창작자와 창작품의 경계선을 넘어 밖
            어가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전시를 보여 주고 있다.                    과 안을 구분하는 그 표피를 걷어내고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허물어 새로운
                                                            신세계 질서를 창조했다.
            작품을 보고 있는 내 자신이 낙타를 보고 있는 것인지, 낙타 속에 비취어진 내
            자신을 보고 있는지 그 행방이 묘연하다. 이러한 시각적 혼란은 관객들에게 사      개인적으로 그가 창조한 이러한 객체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
            물이 무엇인지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에        이 될지 왠지 모르게 흥분된다. 난 그의 작업실에서 그의 작품과 그와 함께한
            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사유를 하는 시간을 창조한다.              시간을 마치고 나오면서 막연히 마르쉘 뒤샹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림
                                                            이 다시 한번 사람의 마음에 봉사하도록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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