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2년 10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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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옥, 천지-피고지고2, 150x106cm, 한지, 먹
性), 남성(男性)의 단어(單語)를 사용(使用)함은 역시(亦是) 삼가해야 한다. 단, 적(前衛的)이며 진보적(進步的)이어야 한다. 본란(本欄)에서 여러 차례 언급(
져널리즘이나, 문학적(文學的)이고 상징적(象徵的)이며 은유적(隱喩的)인 이 言及)했지만 일부(一部) 미술인(美術人)들은 ’미술인들은 미술만‘, ’앙가주망
미지를 강조(强調)하거나 주장(主張)을 위함에는 예외(例外)로 한다. 혹, 테마 은 정치인(政治人)과 사회학자(社會學者)들만‘이라는 고정관념(固定觀念)과
를 제한(制限)하는 것으로 오해(誤解)를 불러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첨언(添 편견(偏見)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형이상학적
言)한다면, 온갖 조형요소(造形要素)를 활용(活用), 의장(儀裝), 계획(計劃), 도 (形而上學的)이고 광범위(廣範圍)한 개념(槪念)에서 기인(起因) 되는 조형성(
안화(圖案化)하는 일체(一切)의 미학적(美學的)인 행위(行爲)는 자유(自由)로 造形性)과 미학(美學)임을 인식하고 깨달아야 한다. 이런 의미(義味)에서 대
워야 하나, 어느 한쪽의 성(性)을 우월 시(優越示) 하는 것을 상징(象徵), 시각 체적(大體的)으로 미술애호가(美術愛好家)들의 빨간딱지로부터 외면(外面)
화(視覺化)하는 일은 피(避)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성(歷史性)이나 사회성( 받고 있는 민중미술작가(民衆美術作家)들은 존경(尊敬)받아야 함이 마땅하
社會性)의 작용(作用)에 의한 남성중시(男性重視)의 반발(反撥)에서 기인(起 다.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은 역사(歷史)와 시대(時代)를 초월(超越)하여 져스티
因)되는 페미니즘을 전적(全的)으로 지향(志向)하기 보다는 미술인(美術人)이 스와 상통(相通)하고 있다. 오히려 미술인(美術人)들이 정치적이든 사회적(社會
기 전(前)에 인간(人間)으로서 휴머니즘을 인식(認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的)이든, 이슈를 시각화(視覺化)하여 진보적(進步的)인 정치(政治), 사회(社會)
는 비단(非但) 미술(美術)뿐만 아니라 문학(文學)은 물론, 예술(藝術)의 전 영 의 구성(構成)에 일익(一翼)을 담당(擔當)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미술인(美術
역(全領域)에 적용(適用)되어야 한다. 흔히 일상(日常)에서도 ’여성(女性)은 매 人)들은 파블로 피카소와 디에고 리베라 등, 세계적(世界的)인 앙가쥬망의 작가
사(每事)에 조신(操身)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편파적(偏頗的)인 말이다. 들과 그 작품성(作品性)을 기억(記憶)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韓國)
남성(男性)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필자(筆者)가 인사동(仁 도 한때, 시사성(時事性)이 있다는 이유(理由)와 민중미술(民衆美術)이라는 이
寺洞) 어느 화랑(畫廊)에서 개인전(個人展) 중이던 작가(作家)로부터 ’선생(先 유로 전시중(展示中)인 작품(作品)이 내려지기도 했다. 일본(日本)으로부터 온
生)님 제 작품(作品)이 전반적(全般的)으로 너무 여성적(女性的)이쟎아요?‘ 라 순수미술(純粹美術?)이란 말도 모호(模糊)하기 짝이 없는 말로서 부자연(不自
는 질문(質問)을 받은적도 있었다. 然) 스럽다. 이러한 의미(義味)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등, 인간(人間)에 관한 어
떠한 사상(思想)도 남녀평등(男女平等)을 저해(沮害)하지 않는 한, 미학과 조형
페미니즘과 휴머니즘을 역사성(歷史性)과 져널리즘의 한 페이지로 간주(看 성(造形性)에 적용(適用)됨을 막아서는 안된다.
做)해서는 안된다. 특히 우리 문화예술인(文化藝術人)들의 인식(認識)은 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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