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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유허비명(鷄林遺墟碑銘)



                        순조(純祖) 계해년(一八〇三) 二월에 세웠다

                        신라에  역사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읽지  않아서이다.  신라는  박(朴)
                       석(昔)  김(金)  세  성이  나라를  다스려  一천여  년을  이었다.  계림은  바로  김알지가  탄

                       강한 땅인데 지금 영남(嶺南) 경주부(慶州府)에 속해 있다. 세상에서 김씨 성들은 모두
                       김알지를 시조(始祖)로 삼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 땅을 전해오며 그 세차
                       (世次)와  연혁(沿革)이  사서(史書)에  실려  있으나  어떤  것은  자세하지  않은데  이제  그
                       비명(碑銘)으로 인해 대략이나마 알 수가 있다. 처음에 탈해왕이 시림에서 닭 우는 소
                       리를  듣고  금빛  궤를  얻어  열어보니  어린애가  들어  있었다.  왕이  이에  거두어  길러
                       이름을 알지(閲智)라고 하고 김씨를 사성(賜姓)했으며 그 숲 이름을 계림(鷄林)이라 고
                       쳤다. 김알지의 七세손 미추(味鄒)는 조분왕(助賁王)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첨해왕(沾
                       解王)이  아들이  없어  미추가  마침내  대신  즉위하여  이사금(尼師今)이라  하였다.  미추
                       왕으로부터  내물왕(奈勿王)  실성왕(實聖王)을  거쳐  눌지왕(訥祗王)에  이르러  마립간(麻
                       立干)이  되어  백성들에게  소  마차  부리는  법을  가르쳤다.  눌지왕이  승하하고  아들  자
                       비왕이  즉위하였으며  자비왕이  승하하고  아들  소지왕(炤智王)이  즉위해  시사(市肆)를

                       열어  사방의  물자를  유통시켰다.  소지왕이  승하하고  아들  지증왕(智證王)이  즉위하여
                       순장법(殉葬法)을  금하고  주군(州郡)에  명해  농사를  권하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
                       을  갈도록  했으며  국호를  신라(新羅)로  정했으며  방언(方言)인  이사금  마립간을  왕이
                       라  부르고  상복제도(喪服制度)를  정했다.  왕이  승하하자  시호(諡號)를  지증이라  하니
                       이때부터 처음 시호법을 사용하였다.

                        아들  법흥왕(法興王)이  즉위해  율령(律令)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公服)을  제정하였
                       으며  연호(年號)를  건원(建元)이라  하였다.  진흥왕과  진지왕을  거쳐  진평왕이  아들이
                       없어 딸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즉위해 자제(子弟)를 당나라에 보내 국학(國學)에 입학시

                       키기를  청했다.  선덕여왕이  승하하고  진덕여왕(眞德女王)이  즉위하니  진평왕의  모제(母
                       弟)요  국반(國飯)의  딸이다.  처음으로  당(唐)나라  제도를  모방해  관복을  만들고  사신을
                       당에  보내  백제(百濟)  격파한  것을  알리고  스스로  태평송(太平頌)을  지어  비단에다  짜
                       서 바치니 당고종(唐高宗)이 아름답게 여겼으며 처음으로 중국 연호를 사용했다.

                        진덕여왕이  승하하고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즉위하니  진지왕의  손자이다.  당나
                       라  장수  소정방(蘇定方)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무열왕이  승하하고  아들  문무왕
                       (文武王)이  즉위하여  부인들에게  중국의  의상(衣裳)을  입게  하고  당나라  군사와  함께
                       고구려(高句麗)를  멸망시켰으며 역법(曆法)을 반포하고 모든  관청과 주군(州郡)의 도장

                       을 새겨 사용했다.  문무왕이 승하하고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하여 사신을  당나라
                       에  보내  예전(禮典)과  사장(詞章)을  청하자  칙천무후(則天武后)가  길흉(吉凶)과  예법,
                       문사(文詞)로  규잠(規箴)에  관계된  五十권을  베껴  하사했다.  신문왕으로부터  성덕왕에
                       이르러  처음으로  누각(漏刻  물시계)을  만들었고  효성왕,  경덕왕,  혜공왕,  선덕왕을  거
                       쳐  원성왕(元聖王)에  이르러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를  정하였고  원성왕으로부터  소성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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