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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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 벌레가 가득 차 있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야학고(野鶴膏)를 얻으면 나쁜 벌
레를 쫓는데 특효’라고 하였는데 그때 갑자기 야학이 내려와 앉더니 머뭇거리며 가
지 않기에 그걸 잡아 씻으니 과연 그 말대로 특효가 있었다. 이장을 마치자 아버지의
병환이 깨끗하게 나으니 고을 사람들이 놀라 탄복하며 효성 탓이라고 하였다. 이때 부
사 심동근(沈東瑾)은 매우 어질었는데 글을 보내 말하기를‘산 수리부엉이와 야학이
왕상의 잉어와 맹종의 죽순과 짝을 이룬다.’고 하였다. 그 후 四년에 상을 당해 三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며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 이 때문에 정려를 받는 은전(恩典)이 있
게 된 것이다.
효자는 침착하고 관대하여 어려서부터 효경(孝經)을 읽으면서「신체와 피부와 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라는 가르침을 항상 외면서 잠시도 효도를 잊지 않았다. 그 동생
응경(膺徑)과 매우 우애가 있었으며 한 집안 형제로 효자의 도움을 받아 생활한 집도
두세 집이었으니 그 평소 행실이 이와 같았다. 이처럼 마음에서 정성이 발하여 저 사
람을 감화시킨 것은 이치가 혹 그렇겠지만 어찌 전적으로 이것으로 그의 평생을 단정
하겠는가?
생각하건대 우리 열성조(列聖朝)에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八도에 반포하여 효자와
충신, 열부(烈婦)를 장려한 것이 세상의 법도가 되었다. 그래서 근 일 고을마다 정려
가 많으나 사람들의 감동함이 도리어 전보다 못하니 이는 너무 형식적이어서 허실(虛
實)이 뒤섞여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공의 사적은 온 고을의 선비들이 다 같은
말로 기문을 청하니 반드시 그렇게 된 까닭이 있어서이다. 효자의 본관은 삼척인데 대
대로 효도가 전해져 내려온 집안이다. 아들 둘이 있으니 흥택(興澤)과 흥윤(興潤)인데
흥택은 아들 구호(球鎬) 하나가 있고 흥윤은 숙부의 양자로 가서 아들 둘을 낳으니 수
호(秀鎬)와 인호(麟鎬)이다. 아, 후손 된 자들은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아
서 각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 신체의 소중함을 알아서 손상시키지 않는다면 그 효도
역시 오늘날에는 큰 효도이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않겠는가? 흥택이 가장(家狀)을 가지
고 와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므로 사양하지 못하고 그 대강을 이상과 같이 써 돌려보
낸다.
정미년 四월 일에 평양(平陽) 박유형(朴逌馨) 씀.
36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