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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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는 다시 여러 종인들과 상의하기를「부지(府誌)에 수록된 실직군왕의 유허(遺墟)를
찾을 수가 없는데 생각하건대 천년 동안 어둡지 않은 선조의 영혼이 이곳에서 오르내
렸을 것인데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것이 자손들의 여한이다. 제단이라도 설치하여 제
사를 지내어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을 조금이나마 펴는 것이 어떻겠는가?」하고는 이
에 월계(月桂) 동쪽 어정(御井) 유허 아래 해좌(亥坐) 언덕에다 터를 잡아 단을 쌓고
비석을 세워 망제(望祭)를 지냈는데 고을 백성이 부(府)의 터라고 송사를 걸었으나 공
이 변설하여 이겼다. 단이 이루어지자 이름을 보본단(報本壇)이라 하고 비석은 실직군
왕망제지비(悉直郡王望祭之碑)라고 하여 후손으로 하여금 영원히 제사를 지내도록 한
것은 어찌 큰 공로가 아니겠는가, 자세한 일은 단비(壇碑)에 쓰여 있다. 그 후 사람이
단 아래에다 공의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을사년 五월 二十二일 정침(正寢)에서 돌아가시니 향년 六十八세인데 부고가 전해지
자 모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북평읍(北坪邑) 대광천(大光川) 구사기점곡(舊砂
器店谷) 해좌(亥坐) 언덕에 장례하였으며 배(配)는 남양홍씨(南陽洪氏) 인협(仁協)의 딸
인데 효성스럽고 안살림을 부지런히 하였는데 기해년 五월 十七일에 출생하고 八월
七일에 돌아가시어 별도로 내지흥(內智興) 고두치(高頭峙) 증조할머니 묘 뒷쪽 갑좌(甲
子) 언덕에 장사지냈다. 三남 三녀를 낳으니 장남 주호(周鎬)는 예행(禮行)으로 자선대
부에 증직(贈職)되었고 다음 석호(奭鎬)는 통정대부요 막내 기호(基鎬)는 가선대부요
딸은 홍연섭(洪然燮) 조석연(曹錫衍) 김일구(金溢九)에게 출가했다. 큰아들은 아들 없
이 딸만 셋이어서 동생 석호의 아들 원욱(源旭)을 양자로 삼았는데 문행(文行)이 있고
딸은 홍규정(洪圭貞) 홍재주(洪在疇) 정각신(鄭珏信)에게 출가했다. 둘째아들은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으니 아들 원욱은 백부에게 양자로 가고 원규(源奎)는 통정대부요
딸은 홍의현(洪懿鉉)에게 출가했으며 막내아들은 아들 둘을 두니 원옥(源玉)은 통정대
부요 원철(源澈)은 가선대부이다.
아, 공의 뛰어난 재주와 학문으로 만약 조정에서 벼슬하게 하였더라면 덕(德)이 충
분하여 임금을 보좌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였을 것인데 동쪽 언덕을 굳게 지키며 깊
숙이 숨어 살면서 효우(孝友)를 실천하니 효우가 이미 집안에 가득해서 아들이 효하고
형이 우애하며 아버지는 인자하여 집안의 삼친(三親)이 각기 제자리를 얻으니 어찌 아
름답지 않으리오. 공이 돌아가신 지 거의 一백여 년이 되어 그 행적이 아직 기록되지
않았으니 어찌 사라지지 않을 줄을 알겠는가? 불초 내가 삼가 집안에 전해오는 것과
여러분이 지은 저술에서 남아 있는 것을 한두 가지 모아 이상과 같이 기술하여 후일
비문을 지을 군자(君子)를 기다리기로 한다.
五세손 광수(洸壽) 는 삼가 행장을 쓴다.
35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