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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眞城君 墓碣文
忠勤貞亮扈聖功臣崇祿大夫眞城君金公之墓 (陽面)
公의諱는起文이요字는斐仲이니三陟人이라生于嘉靖乙巳辛酉에初入仕하여戊子에通政壬辰
에嘉善甲午에嘉義己亥에資憲策扈聖功臣封眞城君하고甲辰에正憲戊申에崇政同年에崇祿癸丑
에內需司提調하고甲寅十月에中風으로沉痼하여丁巳十二月에卒逝하니享年七十有三이라戊午
二月初七日에葬于楊州郡長興面日迎里子坐午向之原이라以功臣으로用禮葬이라有嫡長하니曰
應迪이라公은容儀가雅整하고禀性이峭勁이라處心行事에唯直而正이라早擢南班에位隆名盛이
라眷渥超常에榮業孰幷고勲業不世에儕僚袖領이라稀三一疾로好作仙遊라德邵年高에沒亦有休
라芳流何處오片碣千秋라(陰面)
光海十年戊午(一六一八)九月 日立 成均館進士李福長은撰書
진성군(眞城君) 묘갈명(墓碣銘)
전면 : 추충정량호성공신숭록대부진성군김공(推忠貞亮扈聖功臣崇祿大夫眞城君金公)
의 묘(墓)
공의 휘는 기문(起文)이요 자는 비중(斐仲)으로 삼척인이다. 가정(嘉靖) 을사년 신유
년에 처음으로 벼슬하여 무자년 통정대부가 되고 임진년 가선대부가 되고 갑오년 가
의대부, 기해년 자헌대부로 호성공신 진성군(眞城君)에 봉해졌다. 갑진년 정헌대부(正
憲大夫), 무신년 숭정대부(崇政大夫)가 되고 같은 해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으며
계축년 내수사제조(內需司提調)가 되고 갑인년 중풍(中風)으로 병석에 누워 정축년 十
二월에 졸서하니 향년 七十三세였다. 무오년 二월 초七일에 양주군(楊州郡) 장흥면(長
興面) 일영리(日迎里) 자좌 오향 언덕에 장례하니 공신이기 때문에 예장(禮葬)한 것이
다. 적장자(嫡長子)는 응적(應迪)이다.
공은 용모가 단정하고 품성이 강직해서 일처리가 정직했네. 일찍이 남반(南班)으로 발
탁되어 지위가 높고 명성을 떨쳤으니 임금의 지우(知遇)가 융숭해서 영광스러웠네. 세상
에 드문 훈업을 세워 동료들 가운데 영수(領袖)가 되었는데 질환으로 돌아가시니 나이
가 높아서 죽음도 아름다웠네. 그 향기 어디로 흐르랴, 비석이 천년까지 전하리라.
광해군 一〇년(一六一八) 무오 九월 일 세움
성균관진사(成均館進士) 이복장(李福長) 삼가 씀.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