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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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공은 일찍 문과(文科) 급제하여 성종(成宗) 때 벼슬하여 성화(成化) 임진년에
안동판관(安東判官)으로 나가 효도의 도리로 백성을 다스려 백성들의 풍속이 순후(淳
厚)해지게 되었고 일찍이 낙동강(洛東江)의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좋아하여 공무를 보
는 여가에 그 상이를 왕래하며 즐겼다. 그러다 벼슬을 그만두기에 이르러서 이곳에다
집을 짓고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하는 명이 있었으나 다시는 나아가지 않고 오직 경
서와 역사책을 보는 것을 즐기면서 효제(孝悌)의 의리로 자제를 가르치고 하인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여 세상일을 잊고 생을 마쳤으니 공 같은 분이야 말로 태평성세(太平聖
世)의 백성이 아니겠는가?
공의 휘(諱)는 성경(成慶)이며 묘는 풍남(豊南) 인곡(仁谷) 간좌(艮坐) 언덕에 있다.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 삼척군(三陟君) 휘 추(錘)에게서 계출(系出)하였다.
삼척군의 아들 위옹(渭翁)이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실직군왕(悉直郡王)에 봉
해져 비로소 삼척을 관향으로 삼으니 이분이 공의 十四 대조(祖)이다. 할아버지의 휘
는 광보(光輔)니 부사(府使)요 아버지의 휘는 신언(臣彥)이니 봉직랑(奉直郞)이다. 공의
아들 계손(繼孫)은 보공장군(保功將軍)이요 그 아들은 한백(漢伯)이니 부호군(副護軍)인
데 효행으로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그 아들은 적필(迪弼)이니 훈도(訓導)요 아들은
덕란(德鸞)이니 진사(進士)로 유림(儒林)의 명망(名望)이 있어 유일재(惟一齋) 김선생
(金先生)과 율원(栗園) 이선생으로 도의(道義)의 교분을 맺었다. 그 아들 휘정(輝貞)은
참봉(參奉)이며 이하 자손은 너무 많아서 다 기록하지 못하는데 의논을 수합하여 이
일을 주관한 자는 十一대손 해평(海平)이다.
아, 나 도원이 일찍이 그 동네를 지나지 못했지만 공의 풍도만을 듣고도 이처럼 수
백 년 후에 그 풍도를 상상할 수가 있는데 그 자손들은 그 땅에 세거(世居)하면서 유
열(遺烈)을 상상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지금에는 더욱 행실을 돈독히 하
고 문학(文學)에 더 힘써서 집안의 전형(典刑)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이 비석을
세우는 뜻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공은 세가(世家)의 후손으로 성명(聖明)한 세상 만났네. 일찍부터 영화로운 기근 사
양하고 만년에는 산골에 은거했네. 팽택(彭澤) 고을에 전원(田園)을 지으니 낙동강 가
요 화산(花山) 옆이네. 강산이 아름답고 훌륭한 인물 많네. 한 구역 연기구름 자욱한
데 청풍(清風)이 시원하네. 그 후손들 효도의 명성이 자자하네. 그 누가 예천(醴泉)과
지초(芝草)의 근원(根源)이 없다고 말하는가? 오직 세대가 멀어서 지난 일이 연기 속
에 사라졌네. 이 때문에 여러 자손들이 민멸(泯滅)됨을 크게 염려해 함께 계획하여 강
가에다 비석을 세우니 천만 년 후까지 지나는 자들 반드시 공경을 표하리라.
정조(正祖) 十三년 기유(己酉)(一七八九) 十一월 하한(下瀚)에
장사랑(將仕郞) 명릉참봉(明陵參奉) 완산(完山) 유도원(柳道源) 지음.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3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