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8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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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高麗 太師公 祠庭碑文
三陟治之紫芝田里有除地而巍然一壇者는高麗輸忠奮義安社佐命功臣大匡太師謚는文度三陟
金公神牌奉安之所也라公之眞宅을久失其處하여灑掃莫及하고香火遂替하니闔宗이不忘報本追
遠之誠하여建祀而薦芬芯하니此는緣情而起羲者也라立碑庭下하고以圖久遠할세後孫興奎甫가
謁不佞文之어널不佞이雖不文이나感其勤誠하여遂不牢辭하고謹按公의諱는自男이니悉直郡王
諱渭翁之次亂也라公이以國之柱石으로尊崇儒述하고進用賢才하니豊功盛烈이載諸惇史라不待
碑而可傳이나然이나子孫之於祖先은一氣之流通이니體魄之託은雖曰於此乎於彼乎若魂氣則無
不之也라來格之道는祗在誠不誠如何耳니苟其誠也에祖先陟降之靈이其將煮蒿聆蜜하여洋洋乎
如在하니顧我而歆矣라於乎라今距公之世狄矣라平曰嘉言懿行을未能陳述其萬一하고遂書所感
如右하여俾歸刻焉이라系之以銘曰 沙溪之麓에祭壇翼翼 이라昆裔克肖하여刻琅頌德이라於戯
不忘에土類矜式이라有來百世에昭眎不泐이라
歲乙卯九月 曰 安東金潤東은撰하노라
고려 태사공 사정비문(祠庭碑文)
삼척 자지전리(紫芝田里)에 높이 솟은 단(壇) 하나가 있으니 이는 고려 수충분의안
사좌명공신(輸忠奮義安社佐命功臣) 대광태사(大匡太師) 시호(諡號) 문도(文度) 삼척 김
공의 신패(神牌)를 봉안한 곳이다. 공의 진택(眞宅)을 오래전에 실전(失傳)하여 성묘를
하지 못하고 향화(香火)가 끊어져 온 종인들이 추원보본(追遠報本)하는 정성을 잊지
못하여 사당을 지어 제사를 올리니 이는 실로 정에서 솟아나 기의(起義)한 것이다. 뜰
아래에다 비석을 세우고 오래 가기를 도모하면서 후손 흥규(興奎) 어른이 나를 찾아와
비문을 청하였다. 나는 비록 글을 잘하지 못하나 그 정성에 감격하여 굳게 사양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쓴다.
공의 휘는 자남(自男)이니 실직군왕(悉直郡王) 휘 위옹(渭翁)의 차자(次子)이다. 공이
나라의 주춧돌로 유술(儒術)을 존중하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여 그 큰 공훈이 역사책에
실려 있어 비석이 아니더라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손은 선조들과 기운이
유통하게 마련이니 체백(體魄)은 서로 다르지만 혼기(魂氣)는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와
서 흠향하는지 여부는 단지 성의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참으로 성의가 있다면 오르
내리는 조상의 영혼이 양양하게 마치 계시는 듯 흠향할 것이다.
아, 공께서 가신 지 오래되어 아름다운 말씀과 행실을 그 만분의 하나도 진술하지 못하
고 그 소감만을 이상과 같이 써서 비석에 새기게 하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428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