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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上將軍 金公 墓碣銘
金氏出羅室하여國除而有為高麗三韓壁上功臣上柱國左丞相諱渭翁이食采悉直하니悉直은即
今之三陟이니其後為三陟人이라諱自柱는大司諫이요諱正陣는大將軍이요諱偕는戶部尙書니奕
世膴顯이라尚書는實為公高祖요衛尉尹致仕諱頊과備巡尉後領中郞將諱光裕와副司直諱承孝은
曾祖禰三世也요妣은江陵崔氏니大卿瞻女와旌善全氏니曉女라公諱은仲淳이요官上將軍이니在
職에恩而威하여同僚畏其義而懷其德하니라當魯山遜位에從父解印東歸하여高臥北窓하고有時
藜杖芒鞋로徜徉乎泓峥之間하여脩然塵表라配는江陵崔氏니直浩女라男蘭孫이니靖國勲臣別侍
御上將軍이요孫男은良弼이니東萊府使宣武勲臣이요良輔는陟州君扈聖功臣이라公衣履之藏이
在三陟邑於文里枕癸之原하니崔氏合树焉이라尚無桓楹之刻하여闔宗이僉謀하여使弼榮炯述로
徵余銘이어늘不腆之詞가何足以揚之리요辭之固而請益勤이어늘遂為之叙하고系之以詩曰 卓
哉金公은在職矯强이라魯山遜位에從父歸鄉이라眞珠一圖은徵土潯陽이라高臥北窓에清風颯離
이라朝飲蘭露하고夕餐菊香이라世遠跡湮에難尋遺芳이라自愧蕪辭로揭諸幽堂하노라
戊午仲秋節에唐城洪鍾凡은謹撰
後孫炯苾謹書
상장군(上將軍) 김공(金公) 묘갈명(墓碣銘)
김씨는 신라(新羅)에서 나와 나라가 망한 후 고려 때 삼한벽상공신 상주국 위옹(三
韓壁上功臣 上柱國 渭翁)이 실직(悉直)을 봉읍(封邑)으로 삼으니 바로 지금의 삼척(三
陟)으로 그 후부터 삼척인(三陟人)이 된 것이다. 휘 자주(自柱)는 대사간(大司諫)이요
휘 정휘(正暉)는 대장군(大將軍)이요 휘 해(偕)는 호부상서(戶部尚書)으로 세상에 이름
이 알려졌으니 상서가 실로 공의 고조이다. 위위윤(衛尉尹)으로 치사(致仕)한 휘 관
(琯)과 비순위후령중랑장(備巡尉後領中郞將) 휘 광유(光裕)와 부사직(副司直) 휘 승효
(承孝)는 증조와 할아버지, 아버지 三세이며 어머니는 강릉최씨(江陵崔氏) 대경(大卿)
첨(瞻)의 딸과 정선전씨(旌善全氏) 효(曉)의 따님이다.
공의 휘는 중순(仲淳)이요 벼슬은 상장군이니 재직하면서 은혜로우면서도 위엄이 있
어 동료들이 그 의리를 두려워하고 그 덕(德)을 존경하였다. 노산군(魯山君: 단종(端
宗)을 말함)이 손위(遜位)하기에 미쳐서 아버지를 따라 벼슬을 버리고 동쪽으로 돌아
와 집에서 한가로이 지내면서 때때로 지팡이에 짚신을 신고 산수간을 소요하니 이 세
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배(配)는 강릉최씨 직호(直浩)의 딸이다. 아들은 난손(蘭孫)이
니 정국공신(靖國功臣) 별시어상장군(別侍御上將軍)이요 손자 양필(良弼)은 동래부사
(東萊府使) 선무훈신(宣武勳臣)이요 양보(良輔)는 척주군(陟州君) 호성공신(扈聖功臣)이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4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