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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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先祖考 上將軍 墓表
直三陟府十里而西於文里負癸之原은我十五代祖考秉忠奮義決策翊運靖國功臣別侍御上將軍
府君之藏而淑夫人迎曰鄭氏袍焉이라迄今數百載에尚無表刻하여擧宗이相與謀口以若大家顯祖
之尊으로墓儀不備하니其何以稱於觀瞻하여垂之悠久乎아遂買石而俾炯純으로記之하니藐玆淺
學이何敢冒昧承當我아謹按史乘而叙之曰中宗丙寅九月反正時에公이從平城朴公元宗昌山成公
希顔하여奮羲決策翊運靖國하니翌年二月에錄朴公等百七名하여策公原從勲하니時人이榮之라
我金은出鷄林이라自悉直郡王諱渭翁으로始爲三陟人하니世世爲顯官이라諱僕永監司요諱自柱
大司諫이요諱偕戶部尚書요諱光裕는中郞將이니辛福僭命에避隱鄉里하여自號遯齋라하니於公
爲曾祖라祖의諱承孝니副司直이요考의諱는仲淳이니上將軍이요妣는江陵崔氏公諱直浩의女라
公의諱는蘭孫이요配는延日鄭氏니主簿準의女요文忠公圃隱先生之曾孫女也라男良弼은東萊府
使요良輔는陟州君이요女는適洪衍福하니將仕郞이라府使男勲은僉正이요陟州男熙는部將이니
至今傳世가殆近二十에柯葉이繁衍하여編一國에不可彈記하니亶由公之積累煮後하여振振無窮
也라嗚呼라曷可忘諸리요
戊午八月 曰 十五代孫炯純은謹述
十六代孫成均館典學達壽謹書
선조고(先祖考) 상장군(上將軍) 묘표(墓表)
삼척부 一〇리 서쪽 오문리(於文里) 계좌(癸坐) 언덕은 우리 十五대조 병충분의결책
익운정국공신(秉忠奮義決策翊運靖國功臣) 별시어상장군(別侍御上將軍)의 무덤인데 숙부
인(淑夫人) 영일정씨(迎曰鄭氏)를 부장(祔葬)하였다. 이제 수 백 년이 지나도록 비석이
없어서 온 종중이 서로 모의하여 말하기를‘이런 큰 현조(顯祖)의 석물이 갖추어지지
못했으니 후손들에게 무엇을 보라고 남겨 줄 것인가’하고는 마침내 돌을 사다 비석
을 세우면서 형순(炯純)으로 하여금 비문을 지으라고 하는데 이 천학(淺學)이 어떻게
명을 감당하겠는가? 삼가 다음과 같이 사승(史乘)을 살펴 기록한다.
중종(中宗) 병인년(一五〇六) 九월 반정(反正) 때 공이 평성(平城) 박원종(朴元宗)과
창산(昌山) 성희안(成希顔)공을 따라 분개심을 발휘하여 정책(定策)하여 나라를 안정시
키니 이듬해 二월에 박공 등 七인을 원종훈(原宗勳)을 삼으니 당시 사람들이 영예롭게
여겼다.
우리 김씨는 계림(鷄林)에서 나와 삼척군왕 휘 위옹(渭翁)으로부터 삼척을 본관으로
삼아 대대로 현관(顯官)이 이어졌다. 휘 복영(僕永)은 감사요 휘 자주(自柱)는 대사간
43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