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5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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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郞將)이요 휘는 돈재(遯齋)니 이분 들이 공의 고조 증조할아버지 아버지이며 어머
니는 삼척심씨(三陟沈氏)이니 서운관부정(書雲觀副正) 공무(公懋)의 딸인데 아들 넷을
두었으니 공은 막내이다.
처음 단종(端宗) 때 벼슬하여 벼슬이 부사직(副司直)에 이르렀는데 지혜와 용기가
아주 뛰어나 세조(世祖)께서 잠저(潛邸) 때 중시하였으나 공이 그 뜻을 확고하게 가져
협력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자 권간(權奸) 유자광(柳子光)이 얽어매
려고 위엄으로 협박하고 화복(禍福)으로 꾀었으나 공은 웃으며 응하지 않고 초연히 멀
리 떠나고 말았다. 이후 세상을 영영 떠났지만 충성스런 뜻은 저버리지 않았으니 후세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하지만 알아주고 몰라주는 것이 공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문헌(文獻)이 난리에 타버려 생졸(生卒) 연월일과 이력(履歷) 행적이 아울러 전하지 않
고 오직 절의(節義)를 지킨 한 가지 일만이 거의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일민(逸民)
으로 당시 절의를 세운 여러 현인들과 함께 논의할 만하니 맹자(孟子)가 말한 몸가짐
을 깨끗이 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아, 아름답다고 하겠다.
배(配) 공인(恭人) 강릉최씨(江陵崔氏)는 대경(大卿) 첨(瞻)의 딸이요 계배(繼配) 정선전
씨(旌善全氏)는 사인(士人) 효(曉)의 딸인데 모두 공의 묘(墓)에 부(祔)하였다. 아들이 넷
이니 중순(仲淳)과 계순(季淳)은 모두 상장군(上將軍)이요 말순(末淳)은 군자감정(軍資監
正)이요 종순(終淳)은 적순부위(迪順副尉)이다. 딸이 둘이니 이경번(李景蕃)과 박경량(朴
景良)이 사위이다. 중순의 아들 난손(蘭孫)은 상장군인데 나라를 안정시킨 공로가 있고
계순의 아들은 하손(荷孫)이요 그 다음 장수(長壽)는 중랑장이요 말순의 아들은 숭현(崇
賢)과 언현(彥賢)이요 종순의 아들 세현(世賢)은 무공랑(務功郞)인데 우리 아버님께서 그
묘비명(墓碑銘)을 지으셨다. 난손의 아들 양필(良弼)은 부사(府使)요 다음 양보(良輔)는
척주군(陟州君)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훈되고 하손의 아들은 군경(君敬)이요 장수의
아들은 영영(永英)이요 숭현의 아들은 준복(俊福)이요 다음은 준철(俊哲)이요 언현의 아
들 선(瑄)은 이조참판(吏曹參判)이요 세현의 아들 근(瑾)은 효력부위(效力副尉)요 다음 당
(璫)은 수의부의(修義副尉)요 다음은 영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 한다.
철인(哲人)의 뛰어난 행실은 한결같이 충성이네. 죽기를 결심하고 절의 지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네. 좋은 땅 이곳 무덤에 비석이 높다랗네. 내 말이 과장 아니니 영
원히 그 이름 전하리라.
고종(高宗) 신미년에 공의 十四대손 달호(達鎬)의 꿈속에 풍채가 좋은 노인이 나타
나서 어떤 괴한(怪漢)을 암장(暗葬)해서 불안하다고 일러주기에 가서 살펴 파내어 봉
분이 다시 온전하게 되었다. 영혼이 어둡지 않아 꿈속에서 일러주시니 아는 게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기에 써둔다.
단기 사천삼백육년 계축 (一九七三) 가을에
안동(安東) 김윤동(金潤東)은 짓고
강릉(江陵) 최중희(崔中熙)는 삼가 글씨를 쓰다.
제5편 선조 행장·갈명기(先祖 行狀·碣銘記) 425

